미국인 스티브 블레시(62)는 지난달 29일, 서울에 머물던 차남 스티븐(20)을 잃었다.
이태원 사고 소식을 듣고서 한국에 있던 아들에게 전화했지만 통화하지 못했다.
이곳저곳 아들의 안부를 수소문하던 중 주한미국대사관으로부터 아들이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수억 번을 동시에 찔린 듯…그냥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라고 당시 참담했던 심경을 토로했다.
조지아주 케네소주립대에 다니던 스티븐은 해외 대학에서 한 학기를 다니고 싶어했고, 코로나19 사태로 2년을 미루다 이번 가을학기에 한양대로 왔다.
지난 4일 미국 현지 매체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AJC) 보도에 따르면 부친은 이번 참사와 관련해 한국에 책임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국) 경찰은 완전히 실패했다”며 “(한국 경찰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으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법조계에선 이를 한국 정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 법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경우 천문학적 배상금의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손해를 끼친 피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보상하는 전보적 손해배상제도와는 달리, ‘있을 수 없는 반사회적인 행위’를 금지하고 그와 유사한 행위가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국가가 처벌의 성격을 띤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다.
미국 등 영미법 국가에서 시행되고는 있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도입된 예가 없다.
특히 미국의 외국주권면제법은 원칙적으로 외국 국가는 미국 법원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주권면제를 규정하면서 주권면제의 예외 사유에 관해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송이 진행될 경우 이번 사건이 예외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미국 법원은 북한 정부에 북한에 억류됐다 송환 후 숨진 오토 웜비어의 유족에게 5억113만달러(당시 약 5600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만약 스티븐의 사망과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면 천문학적 배상금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한국인 희생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태원 압사 사고로 외국인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외국인 사망자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형사고 중 가장 많았다.
이중 미국인 사망자 2명 중 또 다른 한 명은 미국 하원의원 조카로 알려졌다.
최근 해외에서 이번 참사 원인으로 정부의 질서유지 및 관리 소홀이었다는 지적이 연이어 나오고 있어, 다른 외국인들의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다면, 외국인들은 우리 법원에 소장을 낼 것이 현재로선 유력하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선 주권면제 원리가 강하게 작용돼 자국 법원에 소송을 내도 기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