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유족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가해자가 자신의 사격으로 특정인을 숨지게 했다며 유족에게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7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5·18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 A씨와 희생자인 고(故) 박병현 씨 유가족이 만났다.
앞서 A씨는 자신의 행위를 먼저 털어놓으며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유족 역시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어렵게 만남이 성사됐다.
A씨는 자신의 총격으로 고인을 숨지게 한 과거의 행동에 대해 사죄했다.
그는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며 “저의 사과가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바닥에 엎드려 미안함을 표현한 A씨는 “지난 40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유가족을 이제라도 만나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에 고인의 형인 박종수(73) 씨는 “늦게라도 사과해줘 고맙다”며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용기 있게 나서주어 참으로 다행이고 고맙다”며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고 A씨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5·18 당시 고 박병현 씨는 25살 청년이었다. 농사일을 돕기 위해 고향인 보성으로 가던 중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지나가다 순찰 중이던 A씨에 의해 사살됐다.
A씨는 조사에서 “순찰 중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민간인 젊은 남자 2명이 저희(공수부대원)를 보고 도망가자 정지할 것을 명령했다”며 “겁에 질려 도주하던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고인의 사망 현장 주변에는 총기나 위협이 될만한 물건이 없었다”며 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계엄군의 총격은 무장한 시위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위권’ 차원이었다는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한편 조사위는 그동안 조사 활동을 통해 A씨의 고백과 유사한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