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상태로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후 귀가한 운전자에게 경찰이 뺑소니 혐의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유족은 사고를 낸 사실을 알면서 도주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경찰은 A씨에게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안전운전 부주의로 인명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을 적용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4일 스쿨존에서 사망사고를 낸 30대 남성 A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이른바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 혐의만 적용했다.
특가법상 도주치사 혐의는 제외했다.
A씨는 지난 2일 오후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인근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이 학교 3학년 B(9)군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사고를 낸 뒤에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인근 빌라에 주차했다가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현장으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사고를 목격한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검거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운전면허 취소 기준인 0.08%를 넘었다.
뺑소니 혐의가 인정되면 민식이법보다 법정형이 높아 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 징역형이 내려질 수 있다.
경찰은 A씨에게 특가법상 도주치사 혐의 적용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A씨가 주차 후 40초 만에 현장으로 복귀하고, 인근 주민에게 112로 신고해달라고 요청한 점 등을 고려해 도망칠 의사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 A씨 진술과 차량 블랙박스, 주변 CCTV 등을 종합한 결과 A씨가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결론 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현장 바로 옆이 A씨 자택 주차장”이라며 “가해자가 사고 현장을 이탈하지 않았고 피해자 구호 조치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뺑소니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B군의 유족은 A씨가 사고를 낸 사실을 알면서 도주한 것이라며 뺑소니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직접 경찰이나 소방에 신고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초 신고자에 의하면 현장에 돌아온 A씨는 ‘뭔가를 쳤는데 사람인지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유족은 A씨가 사고 당시 상황을 인지하고도 자택 주차장으로 들어갔으며, 이후 책임을 줄이기 위해 뒤늦게 현장에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고 당시 차량이 일부 흔들렸고, 브레이크 등도 작동했다면 A씨가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사고가 난 도로는 하굣길 스쿨존이지만 인도가 따로 없는 곳이었다.
통학로로 이용하기 위험해 학교 측은 2년 전, 강남경찰서·강남구청에 보도 설치와 단속 카메라 설치 등을 요구했다.
폭이 좁은 도로에 보도를 설치하려면 양방통행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꿔야 했다.
이를 위해 주민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주민 50명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48명이 반대하면서 보도 설치는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