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쌍둥이빌딩 84층에 있었던 한국인 생존자 인터뷰

By 윤승화

지난주에는 9·11 테러 20주년이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붕괴됐다.

약 3,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한국인은 1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9·11 테러 한국인 생존자의 인터뷰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08년 조선일보는 9·11 테러 생존자 이동훈 씨와 인터뷰를 진행, 보도했다.

연합뉴스

2001년 9월 11일 아침 8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LG증권 뉴욕법인에 근무 중이었던 이동훈 씨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중 노스(북쪽) 타워 84층 사무실로 출근했다.

증시는 아침 9시에 개장하기 때문에 8시 30분에 이동훈 씨와 직원들은 서둘러 아침 회의를 진행했다.

아침 회의를 시작한 지 10분쯤 지났을 때,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충격이 발생했다. 이동훈 씨는 순간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사무실 천장이 3분의 1쯤 내려앉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소방관 / 연합뉴스

복도로 통하는 사무실 현관문을 열자 시커먼 구름이 밀려들어 왔다.

사무실 TV를 켜자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비행기가 부딪혔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바로 그곳이 이동훈 씨의 사무실쯤이었다.

처음엔 소방관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 했지만, 언제 소방관이 올지 모른다는 판단에 이동훈 씨는 직원들과 함께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84층에서 55층까지 내려갈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55층에 이르니 비상계단에 사람들이 꽉 밀려있었다.

당시 쌍둥이 빌딩으로 출동하던 한 소방관. 이 사진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 CNN 보도 화면 캡처

이동훈 씨는 “그렇지만 질서가 있어서 차분했다”며 “계단 한 칸에 두 사람씩 서고, 한 줄은 비워놓은 채 내려갔다. 비워놓은 줄로는 노약자, 부상자, 부녀자 등이 빨리 내려갈 수 있었다”고 매체에 설명했다.

소방관을 처음 만난 것은 40층 정도였다.

소방관들은 산소통과 각종 무거운 장비를 메고 계단을 올라오느라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고 이동훈 씨는 전했다.

사람들은 그런 소방관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당시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람 / 연합뉴스

1층 로비로 도착하자 창밖에서 무언가 계속해서 퍽퍽퍽퍽 떨어졌다.

시커먼 모습이라 건물 잔해인 줄 알았으나 이동훈 씨는 “나중에 그게 사람들이 고층에서 떨어지며 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취재진에 밝혔다.

1층 로비에서 반대편 다른 건물들과 연결된 지하로 이동하던 때였다.

쿠르릉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런(Run, 달려라)”하고 소리쳤다. 이동훈 씨는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당시 잔해에 뒤덮인 사람들 / 연합뉴스

시커먼 구름 덩어리가 뒤에서 쫓아왔다. 이와 함께 뜨거운 열기와 각종 잔해가 뿜어져 나왔다. 이동훈 씨는 그 속에서 사람들이 튕겨져 나오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동훈 씨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지만 곧 몸이 붕 떴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동훈 씨는 매체에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잠시 뒤 엎어진 자세로 눈을 떴을 때는 시커먼 먼지에 사방이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서 비명만 들렸다.

소방관들이 랜턴을 켜고 생존자들을 찾았다. 혼자 걸을 수 있는 정도의 사람 5~6명이 소방관 1명을 따라 손을 잡고 잔해를 헤치면서 걸었다.

무너진 쌍둥이 빌딩 / 연합뉴스

사다리를 타고 비로소 지상으로 올라간 이동훈 씨의 귓가에 또다시 굉음이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이동훈 씨가 근무하던 빌딩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동훈 씨는 신발이 벗겨진 채로 정신없이 뛰었고 비로소 살아남았다.

테러 이후 이동훈 씨는 꿈에서 계속 보는 얼굴이 있다고 매체에 고백했다.

비상계단을 내려가다가 만난 어린 소방관이었다.

영국 매체 ‘더 미러’ 표지

“사람들은 그에게 박수를 쳤고 나도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는 너무나 힘들어하면서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소방관이 된 신참 같았다. 이런 비상 상황이 아니면 도저히 투입되지 않았을 그런 앳된 소방관이었다.

그 뒤 3개월 이상 꿈에서 그 소방관의 눈빛을 보곤 했다. 그때마다 잠에서 깼다.

죽으러 올라가는 사람을 향해 박수를 쳤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