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인 1956년. UN이 주최한 만 17세 미국 교환 고등학생 토론 대회. 다들 각자 나라에서 가장 똑똑해서 뽑힌 17세 고등학생 4명.
토론 주제는 공산당 중국이었다.
이날 토론에 참가한 노르웨이 학생과 호주 학생은 “중국을 유엔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유엔에 가입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필리핀 학생과 한국 학생은 이에 반대했다.
한국 학생은 “공산주의 중국은 유엔에 자리를 얻을 자격이 없다”며 “왜냐하면 그들은 유엔 헌장에 규정된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공산주의 국가의 의사 진행 방해가 없을 때 유엔은 더 효과적일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르웨이 학생과 호주 학생은 공산주의 정권이 굶주린 중국인들에게 식량을 배급해 지지를 얻었으므로 공산주의 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학생은 단칼에 노르웨이 학생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저는 팩트도 가지고 있고,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팩트는 1만 4,000명의 중국 공산군 포로들이 민주주의 정권인 대만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는 겁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북한에서 넘어오는 많은 탈북자를 보는데요, 그들은 우리보다 공산주의를 더 싫어합니다.
그리고 저는 3개월 동안 공산주의 통치하에 있어 봤습니다.
전 항상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가 쏟은 피와 땀과 눈물을 떠올립니다. 우리 한국은 백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싸웠습니다.
만약 중국을 유엔에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유엔을 고의로 방해할 것입니다. 그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들이 세계 정복을 끝낸 후에는 이렇게 말하겠죠.
자기들이 성공했다고”
그러자 노르웨이 학생은 독재 정권과 공산주의를 효과적으로 채택하면 자유를 잃는 대신 생활수준을 일시적으로 향상할 수 있고, 중국인들은 이에 호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학생이 되물었다.
“그럼 노르웨이가 민주주의를 버리고 독재 정권을 채택하는 게 어떤가요?”
노르웨이 학생은 당황하며 “노르웨이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 자유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한국 학생은 답했다.
“아니요. 자유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고학력자들에게만이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받은 사람이나 교육받지 않은 사람이나 모든 사람에게 자유는 소중한 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저희는 한때 자유와 음식을 모두 잃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 이후 우리는 식량을 위해 절대 자유를 팔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 학생과 호주 학생은 토론이 끝날 때까지 중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 학생은 “전 여러분이 얼마나 끔찍하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말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며 “집으로 돌아갈 때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시간이 흘렀다. 중국은 1971년 유엔에 가입했다.
2021년, 미얀마 쿠데타가 발발해 시민들이 사망해나가면서 유엔이 제재를 시도했다. 그러자 중국이 미얀마에 대한 내정 간섭을 반대해 유엔은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다.
65년이 흘러서야 재조명되기 시작한 해당 토론 내용은 전체적으로 중국을 잘 알고 있는 아시아인과 중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서양인들의 모습이 대비돼 화제를 모았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접한 해외 누리꾼들은 “이 토론 이후 6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아시아인 학생들이 중국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한 해외 누리꾼은 “한국 학생이 말한 게 모두 옳았고 한국인들은 그들의 나라를 강한 나라로 만들어서 지금 중국이 감히 한국을 괴롭히지는 못하고 있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놀라운 통찰력으로 지금 일어날 일을, 중국이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정확히 그대로 예언한 한국 학생.
이 학생은 백낙청 서울대 교수로,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 대표로 뽑혀 토론에 참가했다. 백낙청 교수는 고등학생 때 이미 영어를 비롯해 5개 국어가 능통한 영재였다고.
백낙청 교수의 이 같은 토론 영상은 지난달 국내 유튜브 채널 ‘원더’를 통해 소개되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편 백낙청 교수는 이후 미국 명문대인 브라운대학교 영문과를 수석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밟아 25살의 나이에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에는 유학생은 군 복무를 피할 수 있었지만, 백낙청 교수는 유학 도중 군 복무를 위해 공부를 멈추고 귀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