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부터 47년 동안 한옥에 거주하며 ‘한옥 지킴이’로 불렸던 파란 눈의 외국인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12일 새벽 한국인보다 한옥을 더 사랑한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 씨가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한옥 자택에서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45년 미국에서 태어난 바돌로뮤 씨는 23세가 되던 1968년 평화봉사단 일원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바돌로뮤 씨는 강릉에 있는 한옥 고택인 선교장에서 4년 동안 머물렀다. 이때 바돌로뮤 씨는 한옥과 사랑에 빠졌다.
한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바돌로뮤 씨는 1974년 서울 동소문동에 있는 한옥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40여 년을 살았다.
한옥에 살면서 한옥 예찬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재개발 물결에 사라질 한옥을 지켜내는 역할을 했다.
지난 2004년이었다. 재개발 사업으로 바돌로뮤 씨의 자택을 포함한 주변 한옥 60여 채가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바돌로뮤 씨는 한옥의 보존 필요성을 외치며 주민 19명과 함께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승소함으로써 ‘한옥 지킴이’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2년, 한옥의 가치를 알리고 지킨 데 기여한 공로로 문화체육부로부터 세종문화상을 받았다.
세종문화상은 세종대왕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1982년 제정된 상으로, 바돌로뮤 씨는 외국인으로는 첫 수상자였다.
생전 국내 한 퀴즈쇼에 참가해 외국인 최초로 우승해 상금 5,000만원을 받았던 바돌로뮤 씨는 당시 “상금을 기부해 한국 전통 건축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데 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40년 가까이 대한민국 개발사를 지켜봤다. 무조건 헐고 온 나라를 똑같이 생긴 고층 아파트들로 채우는 건 이해가 안 된다. 멀쩡한 한옥들을 없애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
한옥의 장점에 관해 묻는 질문에는 유창한 우리말로 이렇게 답했다.
“한옥은 어디를 봐도 아름다운 예술이다. 나무, 돌, 흙, 종이 등 전부 다 자연 자재로 만드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