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아버지를 한평생 원망해 온 아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평생을 구두쇠로 살아온 아버지가 사실은 독립자금을 지원하고 있었음을.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과거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재조명되며 화제를 모았다. 하와이에서 상해 임시정부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던 하와이 한인애국단을 다룬 EBS ‘다큐프라임’이었다.
방송에는 하와이에 거주 중인 당시 88세 김영호 씨가 출연했다.
김씨는 미군기지에서 조그만 세탁소 일을 하는 아버지 아래에서 무척이나 가난하게 자랐다고 회고했다. 김씨에 따르면, 김씨의 아버지는 미군 군복을 빠는 일을 하며 가장의 역할을 했다.
문제는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해도 먹고사는 일조차 빠듯한 벌이였다는 것. 김씨는 어린 나이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김씨가 꺼낸 기억 속 장면 하나가 있었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온 아버지가 침대 매트리스 밑에 현금을 가득 넣어두는 모습이었다.
김씨는 “(아버지가)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돈을 그 안에 넣어두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씨는 물론, 어머니를 비롯해 다른 가족들은 침대에 절대 손을 댈 수 없었다. 오직 아버지만이 그 돈을 만질 수 있었다.
매사에 엄격하고 잘 웃지도 않았던 아버지를, 돈이 있으면서도 가족들에겐 한 푼도 꺼내주지 않던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란 아들.
최근에야 아들은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게 됐다.
사실 김씨의 아버지는 하와이 한인애국단 단원인, 조선의 독립운동가 김예준 선생이었다. 김예준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인물이다.
독립운동 자금은 상해 임시정부에 안전하게 전달될 때까지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임무였다. 가난했던 아버지가 손에 돈을 쥐고도 가족들에게까지 숨겨야 했던 이유다.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아들 김씨는 오랜만에 찾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결국 오열했다.
“저한테는 말씀해 주셨어야죠. 하지만 이제는 이해해요”
무덤 비석을 어루만지던 김씨는 “이제껏 평생 아버지에 대해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면서 “아버지가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었다는 걸…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