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밖에서도, 한국 안에서도 할 수 없다며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것. 하지만 막상 해보니까 할 수 있었고, 심지어 잘할 수 있었던 것.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바로 1988 서울 올림픽.
1988년은 아직 냉전 시대가 끝나기 전이었다.
88 서울 올림픽 이전의 올림픽들은 솔직히 말해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과 서방권이 보이콧했고, 반대로 1984 LA 올림픽은 공산권의 소련 등이 불참했다.
이와 달리 88 서울 올림픽은 전 세계 IOC 회원국 대부분이 참가한 올림픽이었다. 올림픽 사상 최다국, 최다 선수단이 참가했다.
냉전 시대에 불어오는 화해를 상징한 ‘평화 올림픽’, 88 서울 올림픽은 개막식부터 전 세계의 눈에 인상적이었다.
88 서울 올림픽의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는 바로 故 손기정 선수였다.
이때 손기정 선수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면서 펄쩍펄쩍 뛰며 성화봉송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인상이 강할 때였다.
그 일제강점기에 열렸던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금메달을 따고도 기뻐하지 못하고 일장기를 가리고 침울해했던 손기정 선수.
당시 손기정 선수의 연세는 77세였다. 손기정 선수는 88 서울 올림픽의 성화 봉송 400미터를 뛰기 위해 1년 전부터 연습했다.
손기정 선수의 이같은 성화 봉송은 전 세계에 감동 그 자체로 다가왔다.
그렇게 성화가 올라가고, 시끌벅적한 공연들이 진행됐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적막.
약 2분간 이어진 적막 속에 등장한 어린이 한 명은 말없이 굴렁쇠를 굴리며 올림픽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총괄 기획한 이어령 선생은 “세계인들이 떠올리는 한국의 이미지는 냉전을 상징하는 6·25 전쟁의 이미지”라는 사실을 걱정했다.
“그 전쟁고아의 이미지를 깨겠다. 평화를 보여주고 싶다. 무엇보다 한국의 아이가, 한국에서 생명이 그동안 이렇게 잘 자라났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굴렁쇠 소년은 2021년인 오늘날도 전 세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올림픽 개막식 공연 중 하나다. 2004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에서 굴렁쇠 소년의 오마주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개막식 마지막 순서로는 88 서울 올림픽 주제가이자 현재까지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올림픽 주제가로 여기고 있는 ‘손에 손 잡고’가 울려 퍼졌다.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노래를 부르며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자국 전통 의상을 입고 한데 어우러진 것은 물론,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가 총집합했다.
특히 보이콧으로 얼룩졌던 과거 올림픽들의 마스코트와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전 세계의 화합을 상징했다.
식민지배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한국의 모습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던 이날.
“우리가 분단됐고 전쟁을 겪어서 여러 군데 우리가 불행했지만, 오히려 그 불행 때문에 오늘과 같은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아무도 성공을 확신하지 않고, 현재는 불행하더라도, 혹시 아는가. 결국에는 해낸 1988 서울 올림픽처럼 또다시 우뚝 설 수 있다는 걸. 그건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