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홀로 남은 미군 탱크 한 대가 독일군 부대에 포위돼 끝까지 항전하다 적에게 큰 타격을 주고 주인공은 전사한다.
이는 전쟁 영화 ‘퓨리(2014)’의 마지막 장면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함께 용기 있는 전사의 희생정신을 잘 표현해 많은 이들의 감동을 줬다.
그런데 이 장면이 한국 전쟁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1950년 6. 25일 새벽, 북한은 탱크와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앞세워 서울을 향해 진군한다.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한 우리 군은 후퇴를 거듭한 끝에 결국 경상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모든 땅을 북한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1950년 8월 31일, 낙동강 방어선을 뚫기 위해 압도적 병력의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유엔군도 빠르게 밀고 오는 막강한 북한군 전력에 2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후퇴를 하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엔 유엔군 소속 미 72기갑 여단의 ‘어니스트 코우마’ 중사가 있었다.
코우마 중사는 보병들의 2선 후퇴를 위해 M-26퍼싱 전차에 홀로 남기로 결정하고 밀려오는 500여 북한군 병사와 맞섰다.
그는 전차포와 기관총 탄약을 다 소진할 정도로 치열하게 저항했으며 북한군들이 전차 위로 기어 올라오려 하자 전차 해치를 열고 나와 개인 기관총을 들고 적들과 싸웠다.
개인 화기 총알마저 다 소모한 그는 포탑을 회전시키며 계속해서 전차에 오르려는 적을 떨쳐냈다.
이렇게 9시간 동안 미 보병들의 퇴로를 지킨 코우마 중사는 북한군 250명을 사살하고 제2방어선으로 복귀하게 된다. 심지어 그는 후퇴하는 동안 적의 3개 기관총 진지까지 파괴하는 공을 세웠다
다행히 부상만 입고 부대로 복귀한 코우마 장군은 이 전투의 공로로 미국 최고의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