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달콤하다, 다정하다’는 뜻의 중국어 ‘첨밀밀(甜蜜蜜)’. 홍콩 고전 영화 ‘첨밀밀’로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단어다.
영화 ‘첨밀밀’의 OST인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또한 유명하다. 유튜브에서는 ‘월량대표아적심’ 가사를 한국어로 번역한 영상이 718만회라는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해당 영상에는 답글이 500개나 달린 댓글 하나가 있다. 3년 전인 2019년에 남겨진 댓글이다.
“89년 초임 항해사 시절 화물선을 타고 대만에 상륙 나가서 시내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듣던 곡. 너무나 여운이 남아 당직 때 혼자서 흥얼거리던 노래.
혼자서 듣고 있으면 89년 당시의 젊고 싱싱한 항해사로 돌아간 느낌이다.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그때. 너무나도 그립다”
과거 항해사로 일했던 남성의 댓글이었다.
해당 댓글에는 89년생 다른 누리꾼이 답글을 남겼다.
“내가 태어난 해라니.. 오래되셨네요”
이에 남성은 “그렇죠. 이제는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자꾸 납니다”라며 “89년생인 젊은이, 늘 행복한 하루, 젊음을 최대한 즐기길 바랍니다. 저는 제 젊음 바다에 던지고 후회는 없지만 가끔 여느 젊은이처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점 늘 아쉽답니다”라고 답했다.
89년생 청년은 다시 질문했다. “돈이 먼저일까요?”
답변이 돌아왔다.
“젊었을 적엔 가난한 집안 한 번 일으켜보겠다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가고 싶었던 학교를 포기하고 해양대를 입학했고 밤마다 눈물을 삼키며 하루하루 보내고 어느덧 졸업하고 상선회사에 입사해 배를 탔죠.
월급을 모아서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삶이 윤택해지고 집안이 일어설 때 기쁨을 느끼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자식들이 하고 싶은 것 하고 남 부럽지 않게 살 때는 참 행복했다오.
그렇지만 다 늙어서 되돌아보니 좋은 기억도 있지만 나를 위해 돈 쓴 적 없고 그 흔한 취미생활도 못 가져봤고 오로지 내 아내, 자식, 부모만을 위해 살고 돌아보니 내 자신을 위해 산 삶이 아닌 주변인들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나이라오.
그러니 시간이 허락할 때 여행도 다녀보고 충분히 즐겨보시오. 한 번뿐인 젊음, 돈 생각 말고 이것저것 해보고 나를 위한 투자를 하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뜻깊게 사시오. 난 돈이 전부이고 권력인 줄 알았지만 절대 돈이 먼저는 아니라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닌 젊은이 자네의 인생이오. 이 말 부디 이해해주었으면 하오”
남성은 이후 답글을 통해 해양대 후배도 만났다. 과거 승선 당시 겪었던 일도 나누었다.
34년간 승선 생활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남성이 가장 생각나는 일은 지난 1987년 원목운반선을 탔을 때의 일이었다.
남성에 따르면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바나나와 오렌지가 무척 귀하고 비싼 과일이었다. 하지만 배를 타다 보면 선원들은 현지에서 저렴하게 오렌지와 바나나를 구입해 먹을 수 있었다. 배에서는 후식으로 하루 두 개씩 오렌지를 배급했다.
8개월 만에 한국에 입항하던 날이었다. 당시 선원들은 세관에서 밀수품이 있는지 짐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날 선원들은 저마다 모두 포대자루를 들고 귀국했다.
깐깐한 세관원은 무엇이 들어있는지 물었다.
그중 한 선원이 대답했다.
“집에 애들 좀 주려구”
매일 간식으로 나오던 오렌지 두 개를 맛 한 번 안 보고 모아두었다가 가족들을 챙겨주었던 것. 그러자 그 깐깐하고 냉정한 세관원들이 그냥 통과시켜주었다. 남성은 “마치 새콤한 오렌지 향이 코 끝에 스쳤는지 코 끝이 찡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어느덧 손주를 보고 할아버지가 된 남성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그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남성은 고국을 그리워하며 그 뒤로도 답글로 꾸준히 소통했다.
“정년의 나이도 되었지만 몸이 약해져 이제 선장 생활을 못 하고 미국에 아들 내외와 이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대양을 누비고 외국 생활 많이 하여도 고국 그리움은 늘 힘듭니다.
유튜브를 통해 한국 동포들과 소통하면 늘 답글이 기다려지고 설레입니다. 이렇게 유튜브를 보다 답글을 달면 마치 한국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은 마음만은 늘 한국에 머물고 있답니다.
한국은 지금 더위가 꺾였으려나요? 한인 노인회 회원 부부동반으로 한국에 가기로 했는데 너무나 기다려지네요.
어렸을 적 살던 마을은 없어지고 공단이 들어섰지만 한 번 꼭 가보고 싶답니다. 옛 고향 집터를 한눈에 알아차리겠지요. 눈을 감으면 어머니가 해 질 녘 동무들과 놀고 들어온 저를 세수시키는 모습이 눈에 선할 듯합니다.
제게는 동포를 만나 소통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운 일입니다. 할 일 없는 늙은이 말동무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유튜브의 답글을 기다리고 여러분과 소통하는 게 너무나 즐겁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귀국해서 여러분들과 막걸리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이민생활을 하다 보니 막걸리나 찌개 같은 음식을 아예 못 먹고 먹더라도 조용히 한인타운 가서 먹고 양치랑 향수를 뿌리고 귀가를 하지요. 한국에 가면 한국 음식을 눈치 보지 않고 원 없이 먹어보고 싶답니다”
남성은 답글을 남기는 청년들에게 인생에 관한 조언도 건넸다.
“정말 훌륭한 어른이 되는 방법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맡은 일 묵묵히 하며 그 분야의 최고가 되면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자가 되고 최고가 된다 한들 소통이 없으면 안 되지요. 마치 기름이 떨어진 스포츠카와 같지요. 가장 중요한 것이 주위 사람들과의 소통이지요.
남의 말을 경청하고 내 생각을 밀어붙이지 말고 상대의 의견도 잘 들어주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시키기보단 스스로 실천하고 행동하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말고 도전한다면, 나이가 먹더라도 향수도 뿌리고 웃고 일방적으로 떠들지 말고 남의 말을 경청하면 정말 좋은 어른 될 겁니다.
저 역시도 설거지, 요리, 잔디 깎기, 청소, 손주 보기, 아내와 마트 가고 산책하고 춤도 배우고 아이폰 사용하기, 스마트폰 이용하기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낸답니다.
나이 들어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직접 하고 무용담으로 수다 떨지 않고 내 몸 냄새 안 나게 깨끗이 가꾸고 소통 잘하면 아마 멋지게 늙었다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1년 동안 남성은 꾸준히 답글로 소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성의 아이디로 새로운 답글이 달렸다.
남성의 아들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상을 치르고 휴대폰을 보던 중 여러분들과 아버지께서 소통하신 글들을 보았다”며 “그간 아버지께 답글 달아주시고 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드린 여러분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첨밀밀’의 노래를 들으며 1년 동안 서로 답글 엽서를 주고받았던 남성과 사람들. 누리꾼들은 지금은 고인이 된 남성을 여전히 그리워하며 답글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