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앓던 덕혜옹주 향해 죽기 전 일본인 남편이 보낸 편지

By 윤승화

5월 25일은 107년 전 조선의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가 태어난 날이다.

일제 강점기, 덕혜옹주는 10살을 넘기자마자 일본 유학길에 끌려가듯 올랐다.

이후 1931년 일본인 백작 소 다케유키와 혼약을 맺는다. 황족을 인질로 삼기 위한 일제의 강압이었다.

다케유키는 큰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남이었다. 동경대 영문학과를 나온 당대의 엘리트 학자였으며, 풍부한 감수성에 따뜻한 인품을 갖췄다고 더욱 유명한 청년이었다.

사실 두 사람이 혼인을 올리던 당시, 덕혜옹주는 아버지 고종을 잃은 아픔과 일본으로 끌려온 고통 등으로 인해 조발성 치매 진단을 받을 만큼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혼 전인 1930년 덕혜옹주를 만난 적 있던 다케유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케유키는 혼인을 그대로 진행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지배국의 귀족과 피지배국의 왕녀. 강제로 치른 정략결혼이었으나 다케유키와 덕혜옹주는 곧 다정한 부부가 된다.

실제 두 사람은 얼마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다케유키는 아내를 신경 써주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덕분에 결혼 초반 덕혜옹주의 정신병이 호전되기도 했고, 결혼한 지 1년 후인 1932년 딸도 낳았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조국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망국이 된 나라, 조선을 지켜보며 덕혜옹주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이는 병증 악화로 이어졌다.

남편 다케유키는 그런 아내 곁을 지키며 정성껏 간호하는 동시에 딸아이의 육아를 홀로 도맡았다.

딸 정혜 / 온라인 커뮤니티

그렇게 애써 지켜낸 집안의 평화는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귀족제가 폐지되면서 부서진다. 1945년, 다케유키는 자신이 백작이었으면서도 신분 평등을 담고 있는 귀족제 폐지 개헌에 찬성했다.

의미 있는 선택이었으나 뒤따라오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평민이 된 다케유키는 저택 등 자산 대부분을 처분했다. 그리고 그때에서야 이미 증세가 심해진 지 오래였던 아내를 정신병원으로 옮겼다.

형편이 어려워졌음에도 도쿄 최고급 정신병원으로 아내를 모신 다케유키. 10여 년이 더 흐른 1955년, 장성한 딸이 시집을 가게 되자 다케유키는 이때 덕혜옹주와 이혼한다.

1931년 백년가약을 맺었고, 1955년 헤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24년간 함께한 아내와 작별하고 다케유키는 일본인 여성과 재혼해 종가의 당주로서 자신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는다.

한국에서는 다케유키를 향해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다케유키는 이에 대해 죽는 날까지 한마디 변명은커녕 일절 언급을 하지 않는다.

다만 20여 년이 더 흐른 1972년 딱 한 번 한국을 찾은 적이 있었다.

내려오는 설에 따르면 어느덧 노신사가 된 다케유키는 덕혜옹주를 만나고 싶다며 창덕궁 낙선재로 찾아왔다. 관계자는 “당신 같은 사람한테는 면회를 허용치 않으니 돌아가시오”라고 매몰차게 내쳐서 돌려보냈다. 다케유키는 그대로 일본으로 떠났다.

재회는 성사되지 못했고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한다.

다케유키는 대학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1985년 77세로 눈을 감기 전, 시 한 편을 남겼다.

제목은 사미시라(さみしら). 쓸쓸함, 외로움이라는 뜻이다.

사미시라(さみしら)-환상 속의 아내를 그리워하는 노래

미쳤다 해도 성스러운 신의 딸이므로

그 안쓰러움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혼을 잃어버린 사람의 병구완으로
잠시 잠깐에 불과한 내 삶도 이제 끝나가려 한다.

젊은 날에 대한 추억은 무엇을 떠올릴 것이 있어 떠올릴까.
날 밝는 것도 아까운 밤 굳게 먹은 맘이 흔들릴 것인가.

꽃이 아름답게 핀 창가에 등을 대고
썼다가 찢어버린 당신에게 보낸 편지 조각인가.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기로 생각할 정도로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

두릅나무의 새순이 벌어지는 아침.
옷이 스치는 소리의 희미함과 닮아있다.
떡갈나무 잎에 들이치는 소낙비와 함께 저물었다.

사람이란 젊었거나 늙었거나
애처로운 것은 짝사랑이겠지.
지금 감히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아직 늙기 전의 탄식이라고 해두자.

이 세상에 신분이 높건 낮건
그리움에 애타는 사람의 열정은 같을 거야.

그래도 대부분은 식어버리겠지.
새벽 별이 마침내 옅어지듯이.

빛바랠 줄 모르는 검은 눈동자.
언제나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것은 환상 속의 그림자.

현실 속의 자신이 어디 있는 지도 모르네.

물어도 대답없는 사람이여.

사미시라는 영혼과 비슷해서
사람의 숨결로 타고 온다한다.
한번사람 맘속에 들어가면
오래 눌러 앉아 나가지 않는다 한다.

호적이라는 종이 한 장으로
누구나 부부라고 하지만
할 일을 해내지 못하는 괘씸한 아내여.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남편도 있겠지.

이름도 모르는 아비의 아이를 가져
어미가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어깨를 서로 맞댈 기회조차고 없을지라도
서로 통하는 영혼도 있다고 한다.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이 된지
이미 봄 가을이 손가락으로 세고도 남을 정도로 지났다.

귀엽다고도 사랑스럽다고도 보았다.
그 소녀는 이름을 사미시라라고 한다.

나의 넓지 않은 가슴 한편에
그 소녀가 들어와 자리 잡은지 이미 오래인것을,
마치 마음 놓고 쉴 틈도 없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신하게 무릎을 딱 붙이고 앉아 있다.

하룻밤도 침실로 들이지 않고
꽃잎같은 입술도 훔치지 않지만
아내라고 부를 것을, 내게 허락해다오.

나이먹지 않고 언제나 어린 아름다운 눈썹의 소녀여.

어떤 때는 당신이 가리키는 입술을
저녁 노을 구름 사이로 보이는 붉은 색의 요염함에 견주었다.

네 눈동자가 깜빡거릴 때의 아름다움은
칠월 칠석날 밤에 빛나는 별 같았다.

동그랗고 달콤한 연꽃 씨를
눈물과 함께 먹는 것은 재미가 없다.
연꽃 씨의 주머니가 터지는 것처럼
내 마음은 가루가 되어 부서지고 말았다.

근심이 있더라도 마음을 찢기는 일 없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깨달음을 얻은 성인이겠지.

나의 탄식은 마음을 갈기갈기 찢고 말았다.

내 몸도 또 언젠가는 죽어가겠지.

아아, 신이여, 그리움의 처음과 끝을
그 손으로 주무르실 터인바.

수많은 여자 가운데서
이 한 사람을 안쓰럽게 여겨주실 수 없는지요.

내 아내는 말하지 않는 아내.
먹지도 않고 배설도 안 하는 아내.
밥도 짓지 않고 빨래도 안 하지만.
거역할 줄 모르는 마음이 착한 아내.

이 세상에 여자가 있을 만큼 있지만
그대가 아니면 사람도 없는 것처럼.
남편도 아이도 있을 텐데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나는 계속 찾아 헤맨다.

산은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고
바다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거라고 생각하여
어느 날 후지산 꼭대기에 올라
쯔루가의 여울이 빛나는 것도 내려다봤다.

또 어느 날은 파도치는 해변가에 나와
하늘을 가는 구름을 올려다 보았다.
그렇지만 마음은 달래어 지지 않고 바위를 끌어안는 것처럼
애처로운 가슴을 쥐어뜨는 것 같았다.

개미가 모여드는 계곡의 깨끗한 물을
손으로 퍼올리는 사람은 그 맛을 알고 있겠지.
높은 산 봉우리 봉우리에 피는 꽃 향기는
볼을 가까이 대야지만 비로소 맡은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 너를 만나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내세를 기약할 수 있을까.
환상은 마침내 환상에 지내지 않으며
꿈은 꿈으로 깨어나지 않을 뿐이라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도 별것 아니야.

죄라고 해도 좋아. 벌도 받지 뭐.
유괴도 좋고 함께 도망을 갈 수도 있어.
함께 죽는 것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뿐인 생명을 받았다.

이 세상을 감히 저주한다는 것일까.
나는 이미 미쳐버렸는가. 아니 아직 미치지 않았어.
지금 내리기 시작한 것을 싸라기 눈인가.

무거운 짐차를 끄는 사람은
가끔씩 쉬면서 땀을 훔친다.

얼마간 돈이 생기면
맛있는 술로 목을 축이겠지.

역에 내려선 사람들은
각각의 걱정거리를 가슴에 안고
빠른 걸음으로 묵묵히 여기저기로 흩어져 간다.

집에는 불 밝히며 기다리는 아내가 있으니까.

거리에서 광고하는 사람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애처롭다.

볼에 빨갛게 연지를 칠하고 거리에 서서.
간판을 걸치고 손짓발짓으로 손님을 청한다.

되돌아 나의 처지를 생각해본다.

어린 여학생의 무리는
내게 가벼운 인사를 한 후 느닷없이 명랑하게들 웃더니

무리 지어 화려하게 사라져버렸다.
나는 한숨 휴식 어디로 가면 좋을까.

남모르는 죄를 진 사람이
정해진 대로 길을 가는 것처럼.
언젠가 너를 만나고 싶다고
정처 없이 나는 방황하고 있다.

봄이 아직 일러 옅은 햇볕이
없어지지 않고 있는 동안만 겨우 따뜻한 때.
깊은 밤 도회지의 큰길에 서면
서리가 찢어지듯 외친다. 아내여, 들리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