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아버지는 나와 동생에게 용돈을 주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내일은 꼭 둘이서 소고기 김밥을 사 먹어”
조금 의외였다. 시험 공부를 하던 나와 동생을 갑자기 방으로 불러 용돈을 건네신 아버지.
평소 시험기간에는 혹여나 공부에 방해가 될까 TV도 음소거 모드로 보시던 아버지였기에 더욱 그랬다.
술에 잔뜩 취하셨던 아버지는, 우리에게 용돈을 준 뒤 텅빈 지갑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가만히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희 할머니가 소고기 김밥의 원조야”
뜬금없이 이렇게 말씀하신 아버지는 눈을 꼭 감고, 당신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소풍을 떠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소풍에서 친구들은 소시지가 들어간 김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친구들을 부럽게 바라봤다.
아버지는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워 도시락통을 꺼낼 수 없었다. 아버지의 김밥에는 소시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너희 할머니는 하루종일 밭일 하시느라 소시지를 구할 시간이 없었어. 시골에서 소시지 구하는 게 쉬운 일이겠니?”
그러면서 “너희 할머니는, 소시지 대신 소고기가 들어간 김밥을 싸주셨단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친구들의 소시지 김밥이 부러웠다. 소고기 김밥이 부끄러웠다.
결국 아버지는 도시락통에 고개를 파묻고 허겁지겁 소고기 김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소고기 김밥이 더 좋은 거지.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일 하시고, 철없는 아들 김밥 싸주겠다고 그 시골에서 소고기를 구하러 다니셨을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4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그 말씀을 끝으로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는 아들로서, 자신의 어머니가 정성껏 싸주셨던 소고기 김밥을 부끄러워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후회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소고기 김밥은, 자신이 부끄러워했던 그 김밥은, 더이상 맛볼 수 없었다.
위 사연은 지난 24일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 공개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42864번째포효"내일은 꼭 둘이서 소고기 김밥을 사 먹어"오늘 새벽1시, 당장 내일 시험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와 동생에게 돈을 쥐어주시며 아빠가 말씀하셨다.딸들 시험기간이면 티비 소리도 음소거로…
Posted by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on Tuesday, April 23, 2019
작성자는 자신의 사연을 공개하면서 “살면서 아버지의 눈물을 두 번 봤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바로 오늘”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버지는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이 부끄러웠는지 눈물을 슥 닦으시고는 어서 방으로 가서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라며 “항상 강인하고 밝았던 아버지가 점점 약해지는 게 느껴져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세월이 지나고 아버지처럼 부모님께 죄송했던 일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아마도 부모님께 대한 죄송함, 가슴 속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딸에게 용돈을 주신 것 같다고 작성자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