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람’ 기네스북에 올랐던 한국 생존자

By 윤승화

125미터, 건물 50층 높이 지하에 홀로 갇힌 한 남자.

1967년 8월 22일,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에서 물을 퍼내는 일을 하던 광부 김창선(당시 35세) 씨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출근길이었고,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있던 때였다.

정오가 조금 지난 무렵, 광산이 무너져내렸다. 김창선 씨는 동료들을 놓쳐 순식간에 지하 125m의 좁디좁은 갱 안에 홀로 갇혔다.

암흑천지 속, 추위와 공포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말 그대로 생매장이었다.

KTV 보도 화면 캡처

더듬더듬 갱 속에 마련된 대피소를 찾아 재빨리 몸을 피한 김창선 씨는 망가진 채 땅에 뒹구는 군용 전화기를 발견했다.

김창선 씨는 과거 해병대에서 통신 업무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전선을 연결, 통신선을 복구해 매몰 3일 만에 갱 밖 사무소에 연락하는 데 성공했다.

18살에 해병대에 입대해 통신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던 김창선 씨였다.

그러나 막상 구조는 쉽지 않았다. 굴을 건드리기만 하면 헐려 작업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구조 작업은커녕 음식을 전달하기 위한 파이프 설치도 거듭 실패해 음식을 전혀 전달하지 못했다.

KTV 보도 화면 캡처

김창선 씨는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전부였다.

배고픔만이 아니었다. 고독과 절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김창선 씨를 짓눌렀다.

그러나 김창선 씨는 내내 침착하려 애썼다. 6·25 전쟁에서 이미 일주일 넘게 굶은 경험이 있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구조 작업은 점점 늦어졌다.

악착같이 버텼지만 김창선 씨에게도 끝내 탈수증세가 찾아왔다. 전화기로 의료진이 건강을 확인하고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뉴스1

극한까지 치달으며 차라리 다 포기하고 싶었던 시간을 버티게 한 것은 김창선 씨의 어린 딸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빠”라는 딸의 목소리에 김창선 씨는 온 힘을 다해 버텨냈다.

그렇게 16일, 그러니까 정확히 367시간 45분 45초가 지났다.

모두의 염원이 모인 덕분일까, 1967년 9월 6일 오후 9시 15분, 기적처럼 김창선 씨는 구조됐다.

구조 직후 김창선 씨가 처음 한 말은 구조대원들에게 건넨 “수고 많았습니다”였다.

KTV 보도 화면 캡처

175cm에 62kg이었던 몸무게가 45kg까지 줄고 피골이 상접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김창선 씨의 생환 소식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부모, 형제가 돌아온 것처럼 환호와 축복을 건넸다.

광산 입구에는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몰려 “김창선 만세”를 외쳤다.

먹고 살기 참 힘든 세상이었다. 국민은 극한의 상황에서 돌아온 김창선 씨에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김창선 씨는 한동안 매몰 사고에서 최장기간 생존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세계 언론도 앞다투어 생존 세계신기록을 세운 김창선 씨의 소식을 다뤘다.

KTV 보도 화면 캡처

이는 침착하고 현명한 대처와 강인한 정신력의 결과였다.

김창선 씨는 이후 병원 인터뷰에서 가족이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음식 생각이 간절하면서도, 내가 죽으면 마누라가 고생할 텐데… 아들, 딸 중학교 가면 공납금도 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조차 가늠이 가지 않고 절망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꼭 살아나가서, 나는 못 배워서 험하고 힘든 사고를 겪었지만,

아들딸은 끝까지 공부시키겠다, 반드시 살아나가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버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