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방송 하나가 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2년 전인 지난 2018년 3월 방영된 EBS ‘메디컬 다큐 7요일’이 재조명됐다.
방송에서는 마당에서 넘어지면서 팔이 부러진 93세 김을분 할머니가 병원으로 이송됐다.
수술과 입원이 필요한 상황. 한 살 연하 남편 강한모 할아버지는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쓴 멋진 차림으로 아내 곁을 지켰다.
아내 걱정에 밤새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신 상태를 확인했다.
“아프진 않아? 안 아프나? 아프나? 움직이면 아프고?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 안 아파? 병원에서 아침은 주더나? 밥, 아침에?”
할머니는 되려 혼자 있을 남편을 걱정했다.
“고구마하고 우유하고 있는 거 챙겨 먹어”
할머니의 걱정에 할아버지는 “집에서 내가 알아서 해 먹는다”라고 답했고, 노부부는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걱정했다.
그때 병원 식사가 배급됐다. 할머니가 밥 한술을 뜨자, 할아버지는 안심하며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에 “가서 뭐 챙겨 먹고 아프지 마”라며 당부했다.
각각 스물과 열아홉에 만나 70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온 노부부.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취재진에 “제가 남편이니까 그 사람 보고 싶죠”라며 “병원 있는 게 항상 궁금하고, 오늘 가서 보니까 내가 그만 목이 메지요”라고 털어놓았다.
이튿날,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셔츠에 양복 재킷을 입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할머니에게 갈 준비였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오전에는 농사일을 해야 하니 오후에 가자고 했고, 할아버지는 턱을 어루만지며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농사일을 끝낸 아들이 병원에 가자고 했다. 외출복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모자를 골라 쓰며 취재진에게 물었다.
“이러니까 어때? 촌영감 안 같나?”
70년이 넘도록 잘 보이고 싶은 상대, 할머니 병문안을 또 온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네가 안 오니 별수 있나? 보고 싶어서 왔어”라며 솔직하게 애정표현을 했다.
할머니는 수술과 함께 보름 동안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소식을 전했고, 할아버지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걱정하지 마”라며 달랬다.
서로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본 적 없는 노부부.
한참을 있던 할아버지가 집에 가본다고 하자, 할머니는 괜히 “우유 하나 먹고 가라”며 붙잡았다. 할아버지를 더 오래 보고 싶은 할머니의 속마음이었다.
이미 직전에 우유를 먹고 왔지만, 할아버지는 알면서도 조용히 우유를 또 마셨다.
우유 한 팩을 더 마시고 나서야 “빨리 집에 와야 해”, “나 집에 갈 때는 안 아파야 한다”며 인사를 나눈 노부부.
할아버지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을 병실 밖 복도에 서 있었다.
수술 당일, 할아버지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아내가 수술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다는 이유에서다. 할머니는 그런 남편에게 “자기나 마음 조심해라”며 당부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자기 소식을 궁금해할 한 사람, 할아버지와 통화한 뒤 환하게 웃었다.
시간이 흘러 퇴원 날이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얼굴이 집에 있으니만 못하다. 핼쑥하다. 얼굴이 홀쭉하니 더 말랐다”며 연신 걱정했다.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주변을 서성였다.
“문 좀 열어 놓을까? 문 닫을까? 열어 놓을까?”
할머니가 어디 하나 불편할까 서성이며 말도 걸고, 옆에 꼭 붙어 있는 할아버지였다.
마침 할머니가 퇴원한 날은 할아버지와 아들들이 농사짓는 참외를 처음 수확하는 날이기도 했다.
할머니를 집에 두고 참외밭에 들른 할아버지는 일하다 말고 어디론가 향했다.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집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참외라도 가져오지라며 타박했다. 할아버지는 “뭘 가져오나”라고 답했고, 할머니는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그때였다. 할아버지가 몰래 챙겨온 참외를 내밀었다. 알고 보니 주머니에 숨겨놓았던 것. 참외를 받은 할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이런 사람을 새로 만나고 싶소. 난 다 좋아서…
저세상 가서도. 이 세상 끝나고 저세상 가서도 이 사람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소”
진심을 고백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싫으나? 좋으나?” 물었다. 할머니는 답했다.
“그래, 한 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