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일본이 압도적으로 바둑계를 평정하던 시절, 부산에서 태어난 한국인 꼬마 아이가 어릴 적부터 천재성을 보여 일본 유학을 떠났다.
아이는 11살 때 일본 바둑계 역사상 최연소로 일본기원에 입단했다. 청년으로 자라나면서는 20대 젊은 나이에 다른 일본 기사들을 쓰러뜨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일본 바둑 기전 그랜드슬램 최초 달성, 1,574승으로 사상 최다 승리 등…
일본 바둑계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조치훈 9단이다.
조치훈은 대한민국 국적의 우리나라 사람이다. 일본 귀화 권유를 수없이 받았으나 그 흔한 일본식 이름도 없이 오롯이 조치훈으로 불리기만을 고집했다.
일본에서도 절대 지지 않은 조치훈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일화를 소개하겠다.
일본에는 ‘기성전’이라는 바둑 기전이 있다. 일본 부동의 서열 1위 기전으로, 바둑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응씨배’보다도 상금이 크다.
전 세계 국제기전 중에서 기성전보다 우승 상금이 큰 기전은 없다. 그만큼 난다 긴다 하는 기사들이 명예는 물론, 상금을 위해 출전하므로 무척이나 우승하기 힘든 기전이다.
조치훈이 돌풍을 몰고 오기 시작했던 1983년, 일본 바둑계의 원조 전설이라 불리던 후지사와 슈코 9단은 소문을 듣고 기성전에 출전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흠… 조치훈 군이 그렇게 센가? 내가 한 번 찾아가 봐야겠군”
이는 기싸움이었다. 속뜻은 ‘조치훈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을 내가 가지러 가겠다’는 의미였다.
60대 원로 바둑기사의 이같은 발언을 들은 27살 청년 조치훈은 이렇게 받아쳤다.
“대선배님을 어떻게 찾아오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아니, 제가 선배님의 타이틀을 가지러 가겠습니다)
그러자 기성전 전야제에서 후지사와는 “딱 네 판만 가르쳐주겠다(4:0으로 이겨주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조치훈은 “딱 세 판만 배우겠습니다(3판 져주고 4판 이겨서 우승하겠다)”고 대꾸했다. 일본 바둑계는 청년 바둑기사의 건방지고 패기 넘치는 발언에 놀랐다.
팽팽한 기싸움으로 시작된 대국은 후지사와가 연승하며 3:0이 됐다.
그러나 그 뒤 나머지 네 판을 내리 조치훈이 다 이기고 4:3으로 역전 우승했다. 일본 바둑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였다.
우승을 했으니 이제 인터뷰를 할 차례였다.
“후지사와 선배님의 기성 타이틀이 이번으로 마지막일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집니다”
후지사와는 정말로 이후 죽을 때까지 기성전 타이틀을 따지 못했다.
또 이런 적도 있다.
한 번은 대회 전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와 왼쪽 팔이 다 부러지는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상식적으로 목숨만 겨우 건진 조치훈이 대회에 그대로 참여한다는 건 무리였다.
“나에겐 아직 머리와 오른팔이 있다”며 조치훈은 휠체어를 타고 대국에 임했다. 이 경기 또한 일본 바둑계에서 ‘휠체어 대국’이라 불리며 전설로 꼽힌다.
현재까지 일본 바둑 역사에서 조치훈을 넘어선 기사는 2020년대 일본 바둑계의 최강자인 이야마 유타 한 명뿐이다. 그런 이야마가 가장 존경하는 기사는 다름 아닌 조치훈이다.
이런 조치훈의 좌우명은 “목숨을 걸고 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