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저쪽 사거리 정면에서, 시커먼 벽이. 물이 아니라 벽이었어요, 제가 볼 때는. 벽이 오는 거예요, 까만 게.
근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그 위에 차도 있고 집도 있는 거예요”
지난 21일 누리꾼들이 직접 겪은 공포 체험담을 나누는 유튜브 채널 ‘돌비공포라디오’에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닥친 쓰나미에서 생존한 한국인이 출연했다.
생존자 A씨는 쓰나미 당시 제일 피해가 컸던 지역인 일본 이시노마키라는 시내에 거주 중이었다.
10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주부인 A씨는 이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마트 건물이 흔들렸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갔다.
얼떨떨한 상태로 사람들을 쫓아 밖으로 나온 A씨의 눈앞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3월이었는데, 무척이나 이상한 날씨였다.
석연찮은 기분을 느끼며 주차해 둔 차로 간 A씨의 귀에 웬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저 좀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제 손 좀 잡아주세요” 하며 애원하는 소리였는데, 주변에 사람은 없고 목소리만 들려왔다.
A씨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사람은 보이질 않았고 A씨는 일단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헤드라이트를 켰다.
그제야 보인 앞에는 땅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 바로 앞에서 싱크홀처럼 땅이 푹 파여 꺼져 있었다.
그 틈에 빠진 여자 한 명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 차에서 내린 A씨는 여자를 끌어올려 구한 다음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A씨는 우선 그때까지 A씨의 집을 홀로 지키고 있던 반려견을 꺼내 차에 태웠다.
동네 주민들이 다 나와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A씨는 동네 주민들 사이에 끼어 무슨 일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A씨를 향해 말을 걸었다.
“OO엄마, OO이는 학교에서 왔어?”
A씨는 그제야 ‘아, 나 아들이 있었지?’ 생각이 났다.
정신없이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로 운전을 시작한 A씨. 하지만 도로가 차로 꽉 막힌 상황이었다.
A씨는 할 수 없이 운전을 포기하고 차를 세운 뒤 학교로 뛰어갔는데, A씨 아들의 친구 엄마와 도로에서 만났다.
친구 엄마는 “왜 뛰어가냐, 내 차 타고 같이 가자”라고 했지만 A씨는 거절한 뒤 학교까지 뛰어가 아들과 만나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 동네 주민들은 한데 모여 우왕좌왕하고 웅성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차를 운전해오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됩니다. 쓰나미 오니까 빨리 높은 지대로 피신하십시오!!”
하지만 주민들은 미심쩍어하며 “대피를 해야 하나” 하고 머뭇거렸다.
2011년 당시 A씨는 쓰나미가 뭔지 제대로 몰랐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A씨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은 쇼핑센터였는데, A씨는 일단 쇼핑센터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시 차를 찾아 타고 운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차들이 움직이질 않았다.
당시 A씨의 차는 SUV처럼 높이가 있는 차였기에, A씨는 운전석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서 앞의 상황을 살폈다.
“아니, 왜 차가 안 움직이지?”
차들 앞으로, A씨 차 정면에서 시커먼 벽이 오고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커다랗고 구름처럼 높은 까만 벽 위에는 차도 있고, 집도 떠밀려 오고 있었다.
그게 바로 쓰나미였다.
퍼뜩 정신이 든 A씨는 길 반대편에 있던 다른 건물로 뛰어갔다. 건물에는 비상구가 있었고, 비상구를 나오면 논이 있었고, 그대로 뛰어가면 학교가 있었다.
반려견은 아들의 책가방에 넣고, 아들의 손을 잡고 학교로 피신하기 위해 함께 논 위를 뛰어가기 시작한 A씨.
발이 푹푹 빠지는 논을 힘겹게 뛰어가고 있던 순간, A씨 아들이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A씨는 아들의 손을 잡아끌며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그 순간 아들이 뒤를 문득 돌아보고는 갑자기 “엄마!!” 하며 비명을 질렀다.
A씨도 아들을 따라 뒤를 돌아봤다.
방금 A씨와 아들이 지나온 길로 차들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창문을 막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A씨 아들은 그 장면을 보고 넋이 나가 그대로 몸이 굳고 말았다.
그 와중에 쓰나미는 엄청난 속도로 몰려와 논으로도 들어왔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사람이 포기해버리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던 A씨는 이상하게도 차분해졌고, 쉽게 포기가 됐다.
A씨는 아들 옆에 같이 앉았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반려견을 넣어둔 가방끈으로 아들과 자기 손목을 묶었다. 그리고 아들의 얼굴을 자기 무릎에 묻었다.
“OO아, 이제부터 몸이 엄청나게 아파지고 추워질 것 같아. 근데 절대 고개 들지 마. 엄마랑 약속해”
A씨 아들은 여전히 넋이 나간 채였다. A씨는 문득 옛날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OO아,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진짜 닮았어. 엄마도 달리기를 너무 못해서 한국 할머니 소원이 운동회에서 엄마가 공책 한 권 타오는 거였어”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데, 아들이 갑자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엄마, 그럼 뛰어!”라고 외친 아들은 벌떡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A씨가 힘이 다 풀려버렸다.
발이 안 떨어지자 A씨는 아까 묶은 끈을 푼 다음에 아들을 향해 “OO아, 누가 먼저 학교 도착하는지 내기하자. 근데 뒤돌아보면 반칙이야”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A씨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앞서 뛰어가던 아들이 뒤를 돌아보고 다시 A씨를 향해 뛰어왔다.
“엄마, 쓰나미 오고 있어!”
A씨는 “어, 여기로 오면 안 돼!” 하면서 그 순간 다시 힘이 나 뛰기 시작했다.
간발의 차로 아슬아슬하게 학교로 대피한 A씨와 A씨 아들과 반려견. 그 뒤에 학교 운동장으로도 사람들이 막 범벅이 돼 속수무책으로 쓸려갔다.
A씨는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겠지만, 당시에는 그걸 보면서 아무 감정이 안 들었다”며 “그냥 어, 사람들이 떠밀려가네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좀 전에, 아들을 데리러 학교로 뛰어가던 중 만났던 아들 친구 엄마와 그 친구가 떠밀려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쓰나미 하면 물이 떠밀려오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1차로는 물이 밀려들어오고 2차로는 바닷속 흙, 그러니까 뻘이 밀려온다.
비율로 따지만 물이 2, 뻘이 8 정도라 뻘이 사람이며 차며 다 쓸고 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