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식량 앞에서 굶어 죽기를 택한 과학자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과일과 채소를 먹고 있다

By 윤승화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능은 이성을 압도한다. 살기 위해 비윤리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한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서 옳은 행동만을 할 것이라고 장담할 사람은 거의 없다.

가정을 하나 해보자.

영하 30도의 날씨, 당신은 오랫동안 굶주린 상태다. 이때 당신은 볍씨 한 움큼을 발견한다.

만약 볍씨로 밥을 해 먹으면 당신은 몇 시간 동안 따뜻하게 배부른 배를 어루만질 수 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픽사베이

반대로 볍씨로 밥을 해 먹지 않는다면 전쟁 후 수천만, 어쩌면 수억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볍씨를 먹는다고 해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비난할 사람도 아무도 없다.

설령 먹지 않는다 해도 당신이 굶어 죽은 뒤 볍씨를 찾은 다른 사람이 먹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놀랍게도 이런 상황을 실제로 겪은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 해당 실험실 / 위키피디아

소련 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품종 수집과 보관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아챈 과학자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무수한 양의 종자들을 수집한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당시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실험실에 모아둔 열매 등 종자와 표본들은 30~40만개.

이곳 실험실은 러시아, 아니 세계 최대의 종자 보관소이자 인류 농업의 희망이었다.

그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나치 독일이 전쟁을 일으켰다.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러시아를 향해 진격했고, 독일의 진격 경로에는 실험실이 위치한 레닌그라드 또한 포함돼 있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SBS 보도 화면 캡처

과학자들은 이곳에 남겨진 종자들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방도가 없었다.

군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실험실에 투입할 병력 따위 없다며 거절당했다.

과학자들의 힘만으로는 40만개에 이르는 종자와 표본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종자와 표본들을 놓고 도망친다면 독일군에게 모두 빼앗기거나, 굶주린 피난민들에게 식량으로 이용될 게 뻔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 실험실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뿐이었다.

연합뉴스

수십명의 과학자들은 도망치는 대신 실험실에 남기를 택했다.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게 못 되는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실험실 문을 닫아걸었다.

얼어붙을 것 같은 음습하고 차가운 지하실에서 자는 시간을 줄여 24시간 불침번을 서며 종자를 지켰다.

곧이어 독일군이 맹렬한 기세로 쳐들어왔다. 순식간에 레닌그라드 지역이 포위됐다.

치안이 무너졌다. 독일군의 포위가 이어지며 식량까지 전부 떨어졌다. 굶주린 이들에게 실험실의 종자들은 보호용이 아닌 식사 거리에 불과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아사한 시신들 / 온라인 커뮤니티

도시는 이후 900일 동안,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포위됐다. 하루 평균 300개의 폭탄이 도시를 덮쳤다.

사람들은 톱밥을 먹고 버텼다.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고작 몇 시간 태울 땔감으로 전락했다.

포위 기간 중 공식적으로 70만명, 비공식적으로는 1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과학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지만 단 한 사람도 도망치거나 종자에 손을 대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실제 과학자들 /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리 룹초프. 과일 담당이었던 그리고리는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죽는 순간까지 참아내며 아사했다.

알렉산드르 슈킨. 수십 종의 땅콩을 관리하던 알렉산드르는 끝내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땅콩 자루를 손에 쥔 채 아사했다.

리디야 로디나. 리디야가 지켜낸 귀리 종자는 이후 수천만명을 굶주림에서 구해냈으나, 정작 리디야는 아사한다.

아브라함 카메라즈. 감자, 고구마 등 구황작물 전문가였던 아브라함은 재난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 아사한다.

올가 보스크레센카야. 마찬가지로 덩이줄기 식물 담당이었던 올가 또한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아사한다.

드미트리 이바노프. 수천 개의 벼 품종 속에서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미소를 짓고 아사한다. 벼 품종 자루에서는 쌀 한 톨 사라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이밖에도 크리에르, 말리기나, 코발렙스키…

30여 명의 과학자들이 그들의 의무를 짊어지고 최후를 맞이했다.

이들은 끝내 자신들이 돌보던 종자를 먹지 않았다. 죽은 이들 옆에는 땅콩, 귀리, 완두콩들이 그대로 있었다.

전쟁 후, 과학자들이 목숨과 맞바꾼 종자들은 마침내 해방됐다. 종자들은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재배되고 수확되고 있다.

우리도 이들 과학자들이 목숨 걸고 지킨 종자에서 유래된 채소와 과일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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