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양준일이 다시 입국했다.
그는 이달 초 JTBC ‘슈가맨’ 출연을 계기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미국에서 식당 일로 생계를 꾸리던 그는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다며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끊임없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고 CF 제의도 잇따랐다.
결국 ‘강제소환’된 그는 생애 첫 팬미팅을 위해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31일 예정된 팬미팅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됐고 25일에는 JTBC ‘뉴스룸’에 얼굴을 비쳤다.
연일 그의 기사가 쏟아졌고 기사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신기한 건 댓글에서 악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무명이나 다름 없던 그에게 사람들은 왜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양준일은 90년대 초 약 2년 남짓 활동하며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패션과 노래, 무대매너를 선보였다.
방송사 심의에 걸리고 노래를 부르다 돌을 맞기도 했다.
심지어 출입국 관계자는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며 비자 발급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겉모습이 달라 온갖 설움을 받던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였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그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의 희생양으로 보기도 했다.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는 아픈 손가락처럼 말이다.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그의 탁월함 음악성이 30년이 흘러서야 제 시대를 만난 탓도 크다.
무엇보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의 한결같은 겸손함과 순수함이다.
그와 관련한 미담과 일화는 온라인에서 꾸준히 언급됐다.
양준일은 팬들에게 자장면을 대접하며 먼저 다가가고 팬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는 등 당시 팬들을 극진하게 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앨범 작업을 위해 미국으로 떠날 땐 연락처를 남긴 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팬이 버스를 타러 간다고 하자 정류장까지 배웅을 나가기도 했다고.
일화마다 양준일의 따뜻한 심성과 바른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팬들은 실력이 있음에도 인정받지 못해서 떠났기에, 그가 다시 무대에 서기를 간절히 바랐다.
겸손하고 바보같이 착하기만 해서 그가 더 애틋하고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이 잘 돼야 한다는 믿음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