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터의 기억력에서 배우는 ‘빨리 외우고 빨리 잊는 법’

By 박은주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름답다고 한다. 이루지 못했기에 더욱 진하게 가슴에 남아 그 기억이 평생 간다.

아름다운 일만 기억이 오래가는 건 아니다. 괴로운 일도 쉽게 잊기 어렵다.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을 겪은 사람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해 그 사건이 반복되어 일어나는 듯한 재경험(플래시백)에 시달린다.

이처럼 마치지 못한 일을 끝마친 일보다 더 잘 기억하는 현상을 ‘제이가르니크 효과’ 혹은 ‘미완성 효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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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가르니크 효과’는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제이가르니크(Bluma Zeigarnnik)에 의해 이름 붙여졌다.

제이가르니크에게는 이러한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그는 한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다가 웨이터가 수많은 주문을 정확히 전달하는 걸 보고 돌연 궁금증이 생겼다.

그는 식대를 계산하고 나서 담당 웨이트를 불러 자기가 어떤 음식을 주문했는지 기억할 수 있냐고 물었다.

웨이터는 당황해하며 “계산이 끝났는데 왜 그걸 기억하느냐”고 되물었다.

일을 완결하기 전에는 주문 내용을 기억하려고 애쓰지만, 주문이 끝나고 나면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제이가르니크는 식당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이 심리적 긴장 상태와 연관이 있다고 여겨 관련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실험 대상을 A, B 두 그룹으로 나눠 A그룹은 아무런 방해 없이 과제를 끝내게 설정하고 B그룹은 도중에 중단시키거나 다른 과제로 넘어가게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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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참가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B그룹(과제중단) 참가자가 A그룹(과제완수) 참가자보다 과제를 기억하는 정도가 2배 높았다.

이에 대해 사람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집중하던 상황에서 일을 마치지 못하면 긴장상태가 계속돼 기억이 더 잘 남는다고 자이가르닉은 분석했다.

이 같은 현상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흔한 예가 드라마 엔딩이나 광고카피다.

드라마 엔딩에서는 극적인 장면으로 마무리해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남기며 제이가르니크 효과를 노린다.

광고카피 끝부분에 말줄임표를 붙여 단어나 음절 또는 구절 등을 생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이가르니크 효과를 이용해 잊고 싶은 괴로운 기억을 없애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제 다 끝났다” “그만 흘려보낸다” 등 종결의식을 행하고 말함으로써 마음 속에서 끝매듭을 짓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