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등학교 전교 꼴찌 수준의 학생이 20년 뒤 판사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종훈 판사는 과거 2009년 VJ특공대를 통해 자신의 사법고시 합격 스토리를 전 국민에게 알려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나 체력 부족으로 고등학교 2학년 말 야구를 포기해야 했다.
그가 운동을 그만둘 때 성적이 전교 755명 중 750등, 반에선 51명 중 50등이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해본 적이 거의 없던 그는 고3 때 만든 영어 단어장에 Daddy(아빠), Mommy(엄마), Down(아래로)이라는 기본적인 단어도 적혀 있을 정도로 교과에 대한 지식이 백지에 가까웠다.
게다가 자리에 앉기만 하면 잠이 와서 졸다가 깨기를 반복했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서 화가 나 자신을 때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담은 메모를 책상 위에 붙이며 의지를 불태운 끝에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하고 2학기 기말고사 때는 반에서 27등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컨닝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는 노력의 대가가 성적으로 오르자 공부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3학년부터 수능을 준비해서 재수를 한 끝에 인하대 법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법학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기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사법시험을 2차에만 두 번이나 떨어지면서 철저히 자신을 몰아붙인 자신을 원망하게 되었고 긴장이 끈이 풀리면서 무너져 버렸다. 야구를 포기하던 시절이 떠올랐고 사법시험 역시 포기하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마지막 한 번만 더 준비해 보고 결정하라는 조언에 계속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 판사는 결국 2009년 사법시험 3차까지 모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어 국내 최고 법무법인인 김&장에서 변호사로 활약했다.
그리고 2017년 말 판사 임용에 합격하여 현재 판사의 길을 걷고 있다.
이 판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사시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시험이었다”며 ‘공정성’과 ‘역전의 기회’였던 국가고시가 사라진 것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인터뷰 동안 입버릇처럼 “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긍정적인 태도로 노력하고 인내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운이 따른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이 판사의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