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나무는 국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9년 전.
1960년 4월 11일, 경남 마산시 앞바다에서 한 남성의 사체가 발견됐다.
현장은 참혹 그 자체였다. 사체는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상태로 차디찬 바닷물 위에 둥둥 떠올랐다.
마치 비극적이고 암울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마지막 몸짓 같았다.
조사 결과 사체는 김주열 열사였다.
김주열 열사는 마산에서 시작된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얼굴에 그대로 맞고 즉사했다.
경찰은 김주열 열사의 사체를 바다에 버리면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당시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는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곳곳을 수소문하면서 눈물로 호소했다.
마산 시민들은 시위에 참가했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한 청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더 중, 마산 앞바다에서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심지어 그 사체가 실종됐던 김주열 열사이며, 시위에 참가했다가 숨진 김주열 열사의 사체를 경찰이 바다에 버렸다는 것을 알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시민들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대규모 2차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에는 무려 3만명이 넘는 마산 시민들이 모여 독재 정권의 횡포를 향한 분노를 터뜨렸다.
이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 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몸 던져 싸우던 김주열 열사는 비록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지만, 그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현재 김주열 열사는 고향인 전라북도 남원군 금지면에 안장돼 있다.
또한 서울 4.19 민주 묘지와 마산 3.15 민주 묘지에 가묘가 조성돼 그의 의로운 희생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