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인 척 피니(Chuck Feeney)는 2019년 현재 부인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좁은 임대 주택에서 살고 있다.
그는 명품 의류를 입었던 적이 없고 안경은 너덜너덜하며 손목시계는 노점상에서 구입한 싸구려다.
호화로운 식사를 좋아하지 않고 저렴한 치즈나 토마토 샌드위치 등을 즐겨 먹는다. 자가용도 없어서 외출할 때는 버스를 이용하며 가방은 천으로 만든 작은 것을 이용한다.
잘 때는 반드시 소등을 하는데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도 요구할 정도다. 과거 장거리 통화료가 너무 많이 나오자 집 전화를 해지하고 딸에게 공중전화로 연락하자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렇게 가난한 생활을 보내는 그는 사실 1960년, 세계적인 면세점 DFS(Duty Free Shop) 그룹을 창립해 거액의 자산을 구축한 억만장자다.
6.25 참전용사로도 알려진 그는 탁월한 사업수단을 갖고 있었다. 군대에서 면세 주류로 사업 종잣돈을 마련한 그는 면세점 사업이 크게 성공해 1960년대부터 매년 천만 달러를 벌기 시작했고, 70대 후반부터는 5천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연간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그는 이후 자본금 80억 달러로 1982년 ‘아틀란틱 필란트로피’라는 재단을 창립해 기부를 시작했다.
그는 특히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았다. 모교인 코넬대학에 6억 달러, 캘리포니아 대학에는 1억 3천만 달러, 스탠퍼드 대학에 6천만 달러, 고국인 아일랜드 고등교육에 10억 달러를 각각 기부했다.
또 가난한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위해 수술비를 제공하고 아프리카의 급성 전염병 퇴치를 위해 거액의 자금을 투자했다.
매년 4억 달러 이상을 기부해 지금까지 그에게 남은 순자산은 15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을 숨겨왔던 그는 1997년 회계장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기부 내역이 밝혀져 미국을 발칵 뒤집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검소하고 남을 돕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
대공황 시절, 경건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일랜드 노동자 부모의 자녀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하지만 서로 돕는 공동체 의식을 배웠다. 이는 봉사와 기부 활동을 열심히 하던 그의 부모의 영향이 컸다.
특히 적십자사의 자원봉사 간호사로 일했던 어머니 매들린은 평소 남을 도울 때 “받은 이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면 자랑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그의 몇 가지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천국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