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이 서울 지하철 2, 3호선에서 탑승시위를 벌였다. 탑승 시위는 전동 휠체어 등을 이용해 줄지어 탑승하는 방식이다. 탑승하는 동안 열차 문을 닫을 수 없어 열차 운행이 지연된다.
21일 오전 전장연 회원들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수위가 끝내 공식적으로 답변을 주지 않았다”며 “답변을 받을 때까지 지속해서 ‘출근길 지하철을 탑니다’를 매일 경복궁 역에서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전장연 회원들은 서울시하철 3호선에 올라탔다. 같은 시간 서울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도 전장연 회원들이 지하철 양방향에 탑승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하철 탑승 후에는 바닥을 기는 퍼포먼스도 이어졌다. 동아일보는 이 여파로 지하철 2호선 운행이 45분간 지연돼 8시 13분께 정상운행됐다고 보도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언론을 통해 ‘이동권 요구’를 위한 단체행동으로 알려졌지만, 요구사항을 들여다보면 이동권은 주된 내용이 아니다.
이동권 관련 요구를 보면, 지하철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를 100% 도입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 326개 역 중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은 22개다. 이 중 16개는 올해 안 완공되거나 올해 상반기에 공사에 들어가 2024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나머지 6개 중 3곳인 대흥역, 신설동역, 까치산역은 공간이 협소하거나 사유지 등의 문제가 걸려 정부에서도 대안을 찾고 있다. 저상버스의 경우 꾸준히 도입돼 작년 기준 67.2%로 늘어났다.
따라서 이번 시위는 이동권 보장보다는 장애인 예산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 더 두드러진다. 실제로 전장연이 지난달 29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달한 문서에서는 올해 22억으로 편성된 ‘장애인 탈시설 예산’을 내년에 807억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탈시설’이란 장애인이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일반 주택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주거비용과 돌봄비용을 높여달라는 것이다.
또한 문서에는 장애인 활동 예산을 현행 1조7천억원에서 2조9천억원으로 높여달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탈시설에 대해서는 장애인 단체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일부 장애인 단체는 발달장애인이나 중증장애인은 시설에서 더 안정적으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데, 탈시설을 밀어붙이면 오히려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 역시 탈시설의 경우, 전장연과는 입장이 다른 장애인 단체들과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올해가 탈시설 시범사업 첫 해인만큼 3년간 시범운영을 해보고 잘된 점과 보완점을 분석해 제도 개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장애인 활동 지원 예상을 1조 2천억원 올려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기재부와 복지부는 전면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연 요구에 따르면, 서비스 제공시간을 하루 24시간으로 확대해야 하는데 단순히 예산 증대 외에 인력 확충 등이 필요해 한번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장연은 장애인 단체를 내세우고 있지만 강령과 사상을 보면, 본질적으로는 사회주의 운동 단체다. 강령에서는 7개 조항 중 3개 항에서 “새 세상의 건설”, “지배 권력의 해체”, “가부장적 질서의 해체”, “진보운동세력과의 연대” 등을 내세우고 있다.
전장연은 ‘진보운동세력과의 연대’를 실천한다는 취지로 작년 11월 반미 시위, 2019년 7월에는 종북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 석방 대회에도 참석해 논란이 됐다.
일부 시민들은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북한·중국에 대한 적대 금지 ▲국방비 삭감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요구하는 반미 시위에 참석하는 전장연의 정체성을 놓고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전장연의 박경석 대표는 지난달 29일 인수위와의 면담에 대해 “지난 20년간 양당 정권이 집권했을 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이야기에 불과했다”며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다음달 2일 인사청문회에서 장애인 예산을 약속해야 지하철 시위를 멈추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