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퇴임 후 경남 양산 사저에 머물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6월 9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중국 관련 책을 추천했다.
2022년 4월 출간된 ‘짱깨주의의 탄생’이다.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김희교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가 썼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오랜만에 책을 추천한다. 도발적인 제목에 (내용이) 매우 논쟁적”이라며 ‘짱깨주의의 탄생’을 읽은 소감을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책을 추천하며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라며 “책 추천이 내용에 대한 동의나 지지가 아니다. 중국을 어떻게 볼지, 우리 외교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다양한 관점 속에서 자신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며 “이념에 진실과 국익과 실용을 조화시키는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상사를 언론의 눈이 아닌 스스로 판단하는 눈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문 전 대통령이 논쟁적인 책을 추천하며 내 놓은 메시지는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정책을 두고 ‘친중’ ‘저자세’ ‘굴종’ 등의 비판을 쏟아냈던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친미 노선을 뚜렷이 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던지는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이었던 2017년 12월 방중 시 중국 베이징대에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대국’이라고 치켜세우고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지칭하면서 중국이 주변국을 보다 넓게 포용해줄 것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사대주의 논란이 일었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노영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중대사 시절,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 글귀를 적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
만절필동은 ‘황하의 강물이 수없이 꺾여도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 모든 게 이치대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천자를 향한 제후들의 충성서약 내용을 담았다.
중국 우한(武漢)발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도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중국을 향해 ‘한국과 중국은 인류공동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짱깨주의의 탄생’이라는 책은 ‘짱깨’라는 한국에서 중국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등장한 시기와 개념, 역사성을 설명하면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짱깨주의(중국 혐오)’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통되는지 분석한다.
책을 쓴 김희교 교수는 ‘자장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었던 ‘짱깨’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중국이나 중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굳어졌으며 반중·혐오 정서가 고조되며 ‘짱깨’라는 용어는 어느덧 한국 사회에서 중국을 인식하는 주류 프레임이 됐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짱깨라는 개념은 서구의 인종주의가 지니는 혐오를 그대로 품고 있다며 한국 내 반중 정서의 뿌리를 고찰했다.
그는 1894년 청일전쟁 전까지 한국에서 중국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승전국 일본이 청을 내쫓고 조선을 장악하면서 중국인을 열등하고 미개한 국민으로 선전한 것에서 이른바 짱깨주의가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조선인도 일제의 식민 담론에 포섭됐으며 해방 뒤 미군정, 한국전쟁과 중국 참전, 반공주의 확산은 중국 혐오와 적대감을 증폭시켰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미-중 패권 충돌 시기 한국의 안보 보수주의가 중국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서구의 ‘차이나포비아’ ‘중국 때리기’ 개념과 구별해 ‘짱깨주의’로 정의하기도 했다.
짱깨라는 개념은 서구의 인종주의가 지니는 혐오를 그대로 품고 있으며 기저에는 20세기 전후(戰後) 체제의 위기와 미국의 신냉전 회귀의 기획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후 체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인 샌프란시스코조약(1952년 발효)과 1979년 미-중 수교로 이어진 키신저 시스템의 복합체를 의미한다.
이를 두고 한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선택한 ‘정치·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프레임은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미국 단일 지배체제가 흔들리고 미-중 대결이 본격화하면서 한반도 남쪽의 짱깨주의도 더 거칠어진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이런 배경에서 모든 사안에 대해 ‘중국이 나쁘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짱깨주의’가 출현했다고 김 교수는 주장한다. 이를 기획하고 추동하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체제로의 귀환을 바라는 ‘안보적 보수주의’ 세력이라고도 했다.
김 교수는 짱깨주의를 ▲유사 인종주의 ▲신식민주의 체제 옹호 ▲자본 문제를 중국 문제로 치환 ▲신냉전체제 구축 등의 프레임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근래 들어 심각해진 한국 내 ‘혐중’ 정서 확산에는 언론 보도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즉 한국 내 중국 연구자들과 언론이 ‘일그러진 프레임’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보도하고 연구했기 때문에 ‘짱깨주의’라 할 수 있는 중국 혐오·배척이 한국 내에서 확산 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한국 언론이 중국을 꾸준히 독재 국가로 규정해 왔지만, 이는 서구 민주주의를 표준화한 결과물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15부 평화체제와 중국’은 ▲평화체제 관점으로 중국 보기 ▲전쟁 억지력으로서 중국 ▲다자주의의 중심축 ▲단일 시장의 급진성 ▲자본 억제적인 당-국가체제 ▲내부지향적 국가의 경험 ▲공통의 생활세계 ▲짱깨주의를 넘어: 다른 방식의 세계 꿈꾸기로 구성돼 있다.
문 전 대통령이 이 책을 추천한 것을 두고 한 중국 연구자는 “반미 혹은 반서구 문제의식에 눌려 중국 현실을 부정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연구자는 “도발적인 문제 의식에는 동의하지만 ‘중국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문제’는 식의 문제 제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지난 정부의 외교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한국인의 중국 인식이나 학계 논쟁이 아니라 언론보도 태도와 진보 학계 모두 문제라는 것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속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짱깨주의의 탄생’을 추천한 배경에는 지난 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언론과 일부 식자의 잘못된 프레임에 의해 왜곡됐고 ‘중국’이라는 형상도 일그러졌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