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장관은 ‘철회 대신 보류’…전 관료·입법회 의원 32명도 “철회”
시위대, 세무국·출입국관리사무소 등에서 시위 벌여
홍콩 내 최대 친중국파 정당의 영수가 야당과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철회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혀 향후 홍콩 정국에 상당한 파문을 불러올 전망이다.
2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홍콩 내 친중국파 정당 중 최대 세력을 자랑하는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의 스태리 리(李慧瓊) 주석은 전날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리 주석은 “최근 사태를 생각하면 범죄인 인도 법안의 ‘보류’를 고집하는 태도는 별로 현실적이지 않다”며 “정부 내 모든 관료가 법안 추진이 중단됐다는 것을 아는데 왜 이를 고집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가 사회를 치유하려는 목적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의 완전한 철회를 발표한다면, 우리 정당은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범죄인 인도 법안은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는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불러들이는 데 이 법이 악용될 수 있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홍콩에서는 대규모 송환법 저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홍콩 시민 약 20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열리기 전날인 지난 15일 송환법 ‘보류’를 발표했지만, 범민주 진영은 완전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리 주석은 “대화가 갈등보다는 낫다”며 “최근 시위는 뚜렷한 지도자가 없어 대화가 쉽지는 않겠지만, 정부는 시위 참여자들과의 대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그는 지난 12일 입법회 주변 시위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을 조사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송환법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은 친중파 진영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어 캐리 람 행정장관은 점차 ‘고립무원’의 처지로 빠져드는 분위기이다.
전직 경제장관, 전직 정무장관, 전직 보안장관 등 전직 고위 관료와 전직 입법회 의원 32명은 연대 서명한 서한을 통해 현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 범죄인 인도 법안의 철회를 요구했다.
전직 상무장관인 프레드릭 마는 “정부는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큰 불만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며 “사회의 중추인 젊은이들이 사회에 커다란 불만을 지닌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지적했다.
친중파 정당인 자유당을 이끄는 펠릭스 청은 “정치적으로 분열된 두 진영의 목소리를 다 듣기 위해서는 행정장관 자문 기구인 행정회의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홍콩 내 주요 대학 학생회는 정부가 4대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혀 향후 정국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4대 요구사항은 ▲송환법 완전 철회 ▲12일 시위에 대한 ‘폭동’ 규정 철회 ▲12일 시위 과잉 진압 책임자 처벌 ▲체포된 시위 참여자 전원 석방 등이다.
지난 12일 수만 명의 홍콩 시민이 입법회 건물 주변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저지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최루탄, 고무탄, 물대포 등을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8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홍콩 경찰은 시위 참여자 32명을 체포했으며, 캐리 람 행정장관과 스테판 로 경무처장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해 시민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날 오후 100여 명의 시위대는 완차이 지역에 있는 세무국 빌딩 출입구를 봉쇄하는 시위를 벌였다가 이후 출입국관리사무소 빌딩으로 가 시위를 벌였다. 이후에는 정부청사와 입법회 건물로 향했다.
이날 시위는 지난 21일 경찰청 포위 시위처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한 시위대의 실시간 의사소통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