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와 중국 문화 보급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미국 대학에 설치된 공자학원이 중국 정부의 선전 수단 역할을 하고 있다는 미 상원 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왔다.
미국의 소리(VOA) 등 다수 언론이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 상원 상설조사소위원회(PSI)는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가 미국 내 공자학원의 자금, 직원, 프로그램을 포함한 거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고 있으며, 어떤 강연자에게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15년 동안 미국 대학에 100개 이상의 공자학원을 개설했다. 위원회는 운영 방식의 투명성과 중국 내 미국 교육기관에 홍보 기회를 똑같이 주는 상호주의가 보장되지 않으면 미국 내 공자학원을 폐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서방에서는 5~6년 전부터 공자학원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에 자금을 지원해 중국어와 중국문화 강좌 등을 마련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대가로 달라이 라마 초청이나 톈안먼 사태, 대만과 티베트 독립 문제 등을 언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중국 군사력 강화, 공산당 지도부의 당파 싸움, 중국 인권 문제 등도 건드릴 수 없는 금기 주제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서방국가는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을 통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체제 선전만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최근 공자학원은 전 세계적으로 강한 역풍을 맞으며 퇴출당하고 있다.
미국 각지 공자학원 폐쇄 상황
미국 미네소타대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이 학교의 공자학원을 폐쇄한다. 2014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 ‘빅 텐 대학교(Big Ten universities)’ 14곳 중 5곳이 공자학원을 폐쇄했다.
미국 전국학자협회 2019년 1월의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공자학원 105곳 가운데 13곳의 대학이 문을 닫았거나 폐쇄를 결정했으며 미네소타대는 14번째다.
협회가 2017년 발간한 공자학원에 대한 보고서는 “공자학원이 투명도, 학술의 자유와 화제의 심사(대만과 티베트를 포함) 측면에서 우려된다”고 강조하며 모든 대학에 공자학원 폐쇄를 권고했다.
2014년 9월, 시카고대가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공자학원 폐쇄를 결정했다. 이 대학 교수 100명은 “공자학원이 중국공산당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학문적 자유를 짓밟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펜실베이니아대도 같은 해 10월 “공자학원이 정치적이며 순수한 학문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공자학원을 퇴출했다.
미국 내에서 학생수가 두 번째로 많은 텍사스 A&M대학은 지난해 4월 공자학원과의 협력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고, 노스플로리다대학도 2019년 2월 공자학원의 문을 닫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미시간대, 노스캐롤라이나대, 조지워싱턴대 등 대학 캠퍼스에서부터 유치원,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공자학원 110개가 설립됐다. 이는 단일 국가로는 최대 규모다. 최근 미국 내에서 공자학원에 대한 비판은 더 거세지는 양상을 보인다.
캐나다 뉴브런즈윅주, 지역 내 공자학원 폐쇄 결정
캐나다 뉴브런즈윅주 교육청이 이 주의 공자학원을 폐쇄하기로 했다고 최근 CBC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도미니크 카디 뉴브런즈윅주 교육감은 “공자학원의 진정한 목적은 중국 공산당의 관점을 주입해 학생들이 중국 공산당의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공자학원에 참가한 학생 5명이 “수업 시간에 대만 문제에 대한 토론이 금지됐다”는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카디는 공자학원이 중국 공산당이 인정하는 내용만 가르치고 그들에게 불리한 이슈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등 역사적으로 저지른 잘못은 학생들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6월 안으로 공자학원을 폐쇄하겠다는 문서를 공자학원에 보냈다고 밝혔다.
2013년에는 캐나다 맥매스터대가 서방에서는 처음으로 공자학원을 폐쇄했다. 이 대학 공자학원이 중국어 강사를 임용하면서 ‘파룬궁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신앙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본 것이다.
공자학원의 교사 채용이나 교육과정은 보통 중국 당국이 선정하고 출자하는데, 캐나다 정보기관은 중국이 공자학원을 통해 해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10년 당시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의 리차드 패든 국장은 “공자학원이 중국 공관 통제 아래 캐나다의 대(對)중국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고 밝혔다.
퀘벡주 셔브룩대도 공자학원 문을 닫기로 했고,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과 매니토바대는 공자학원 개설을 거부했다.
영국 집권당 보고서 ‘공자학원 통한 중국의 침투와 위협’
영국 보수당 인권위원회는 지난달 1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곳곳에 침투한 공자학원이 공산당을 대변해 전 세계 학술, 언론자유,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영국 대학들은 공자학원과의 협력을 잠정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보수당 인권위원회는 “영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공자학원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라며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을 이용해 대외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고 밝혔다.
학자, 전 외교관, 인권활동가와 연구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이 보고서는 “공자학원이 중국 해외 선전기구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는 리창춘(李長春) 전 상무위원의 말을 인용했다.
보수당 인권위원회 베네딕트 로저스부의장은 “중국은 공자학원이 그들의 ‘소프트 파워’의 중요한 일환임을 공식 인정했다”며 “각국 대학에 입주한 공자학원은 학술의 자유에 관한 투명성이 부족하고 많은 교직원은 중국 정부에 고용돼 있다. 또 많은 논문, 서적, 행사가 티베트, 톈안먼, 대만 등 민감한 이슈를 다루다가 삭제되거나 취소되는 것을 봤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영국이 공자학원과의 모든 합의를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며 공자학원에 대한 심사를 건의했으며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자학원과의 모든 추가적인 합의를 중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현재 영국에는 주요 대학에 최소 29개소의 공자학원이 설치돼 있으며, 공자 교실도 전역의 고교에 148개소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고서는 그 외에도 코펜하겐 경영대, 호른하임대, 리옹대 등 세계 각지의 27개 대학과 학원이 공자학원과의 계약을 중지한 사례도 열거했다.
네덜란드 명문 레이던대학, 공자학원 폐쇄 예정
네덜란드 명문 레이던대학도 공자학원을 폐쇄할 예정이다. 이 학교 홈페이지에 따르면 레이던대학은 올해 8월 말 계약이 만료되면 공자학원과의 협력을 끝내고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1575년에 설립한 레이던대학은 현재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공자학원은 2007년 레이던대학에 지부를 설립했다.
레이던대는 성명에서 “이 기관의 활동은 이 학교의 중국 전략이나 최근 몇 년간의 방향에 맞지 않기 때문에 더는 공자학원과 협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2013년 9월 프랑스의 리옹 제2대학교와 제3대학교가 중산대학교와 합작 설립한 공자학원을 폐쇄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미디어 대학 등도 공자학원의 문을 닫았다.
지난 2005년 유럽에선 처음으로 문을 열었던 스웨덴 스톡홀름대도 “공자학원이 중국 문화 전파보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선전도구로 활용돼 왔다”며 2015년에 폐쇄했다.
공자학원은 중국 정부 선전 수단
공자학원은 쉽게 말해 중국형 문화원이다. 공자학원을 통해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전 세계 수강생은 약 1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2020년까지 1000개소의 공자학원 개설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른 문화원과 달리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 산하 정사국(正司局)급 국가한어국제보급영도소조 사무실(漢辦, 한반)이 관리하고 있다. 베이징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교육방침, 강사, 자금 및 조직구조까지 한반의 철저한 통제를 받고 있다. 중국 국외의 공자학원은 모두 그 지부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유럽지역에서 공자학원을 설립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한국에도 2004년 11월 서울에서 최초로 문을 열었고 현재까지 138개국, 525곳에 설립돼 있다. 중국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관련된 51개국에도 공자학원 135개가 설립됐다.
중국 정부는 공자학원 설립 목적을 중국어와 중국 문화 보급으로 다양한 문화 발전과 화목한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체제 선전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보기관이 공자학원을 통해 스파이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의심한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지난해 2월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공자학원이 미국 내 중국 유학생은 물론, 중국 민주화운동 또는 인권 활동과 관련된 재미 중국인의 동향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윤슬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