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통령, 중국 대학생들에게 ‘마르크스주의 폐해’ 언급

쓰촨대 강연서 중국이 마르크스 고향에 기증한 동상 거론하며 지적
“마르크스 이름으로 행해진 ‘큰 피해’ 생각 않고 마르크스 얘기할 수 없어”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중국 대학생들에게 ‘마르크스주의의 폐해’에 대해 언급했다.

7일 중국 쓰촨(四川)성 성도인 청두(成都)에 위치한 쓰촨대 강연에서였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강연에서 ‘공산주의 창시자’로 불리는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1818~1883년)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중국 정부가 마르크스의 고향인 독일 트리어(Trier) 시에 마르크스 동상을 기증한 사실을 거론했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에 독일 라인주(州) 트리어 시에서 태어났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지난 5월 5일 트리어 시에는 높이 5.5m, 무게 2.3t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다. 이 동상은 중국 정부가 기증한 것으로, 중국의 유명 조각가 우웨이산(吳爲山)이 제작한 것이다.

주중 독일대사관이 배포한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연설문에 따르면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독일인들과 중국인들은 현재의 문제뿐 아니라 동일한 역사적, 지적인 이념들에 대해서도 매우 생각이 다른 것 같다”고 운을 뗐다고 영국의 로이터 통신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마르크스가 의심할 바 없이 독일의 위대한 지식인이며, 영향력 있는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가, 사회과학자였다고 말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또 “마르크스가 열정적인 인간주의자였다는 사실도 의심할 바 없다”면서 “그는 언론의 자유, 인간적인 노동 환경, 보통교육, 여성을 위한 정치적 권리, 환경보호 등을 요구했다”며 마르크스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 독일인들은 ‘철의 장막’ 시기에 구(舊)동독과 유럽에서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행해진 ‘큰 피해'(havoc)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마르크스에 관해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철의 장막’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구(舊)소련이 주도한 공산주의 진영에 속한 동독과 동유럽 국가들의 폐쇄성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그 시기 마르크스주의가 모든 것을 지배했으며, 개인은 아무 쓸모가 없었고, 가족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이웃은 서로 싸워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이 감금되고 살해당하지 않으려고 도망을 쳐야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선 어떤 비판도 하지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현재 서방세계에서는 중국 당국이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위구르족 이슬람교도들을 대상으로 ‘재교육 수용소’를 운영하는 데 대한 비판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종주국’을 내세우는 중국에서는 마르크스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식에서 “마르크스는 현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이 마르크스주의를 정치이념으로 채택한 것이 절대적으로 옳았다면서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의 수호자이자 실천가로 남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빈부 격차가 심하고 인권탄압도 자행되는 ‘반(反) 마르크스주의’ 국가라는 반론도 없지 않다.

독일에서는 2년 전 중국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마르크스의 고향에 동상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때부터 중국의 인권문제 등을 이유로 동상 기증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다.

빈프리드 슈파이트감프 독일 카셀대학 역사학 교수는 지난해 3월 한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동상 건립에 반대할 만한 이유가 여럿 있다”면서 “중국 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모범이 아니며, 마르크스의 저작들은 여러 독재국가에 이념적 기반을 제공했다”고 반대 여론을 전했다.

동상 제막식 당일에도 옛 동독의 인권탄압 희생자 협회, 반(反)파시즘 평화운동가, 티베트 독립활동가 등이 구호를 외치며 동상 건립 철회를 요구했다.

또 제막식 후 닷새 만에 누군가가 동상에 현수막을 걸고 방화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