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회가 화웨이(華爲)에 대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 통신, 정보주권을 지킨다는 목적이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 공산당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국의 정보침투기관으로 드러나고 있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 특히 공산당과의 관련성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화웨이는 설립에서 발전, 오늘날 세계적인 통신장비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중국 공산당과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80년대 중국 정부는 자국의 수출입을 엄격히 통제했고,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에는 고삐를 더욱 바짝 죄었다
외국도 중국의 변화에 대응했다. 중국과 교역하던 국가들은 중국으로의 기술이전에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수출입 규제가 한창 심하던 1987년 전직 군 간부였던 런정페이(任正非)는 통신장비 제조기업 화웨이를 창업했다.
런정페이 회장은 2만1천위안(500만원)의 자본금으로 화웨이를 설립하고 장비제조에 필요한 정밀부품을 수입했다.
하지만, 정부와 공산당의 엄격한 수출입 제재 때문에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장비를 완성품으로 수입할 수 없었다.
런 회장은 주요 부품만 수입하고 나머지는 중국 내에서 직접 생산해 이들을 조립해 완성품으로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 다른 기업들은 수출입 제재로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화웨이는 중국 내 유일한 통신장비 공급자로 자리잡았다.
중국 중서부 지자체들은 통신장비 시장을 독점하던 화웨이 제품으로 통신망을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화웨이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1990년대 들어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수 독점을 바탕으로 성장한 화웨이는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했다.
중국에 기술제품 수출을 규제하던 많은 국가에서 문호를 개방했다.
중국 정부가 화웨이에 돈을 댔다는 증거
서방국가에서는 그동안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수차례 지적했으나, 화웨이는 이를 부인해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 자금이 화웨이에 지속적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드러난 뉴스가 있다.
2005년 중국 인터넷포탈 시나닷컴에는 “중국 국영 국가개발은행(CDB)이 지난해 12월 화웨이에 10억달러(1조원)의 돈을 빌려줬다”는 뉴스가 실렸다.
당시 CDB로부터 대출을 받은 민간기업은 화웨이가 유일했다.
2009년 관영 신화통신은 “CDB가 화웨이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며 30억 달러(한와 약 3조원)를 빌려주기로 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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