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정부가 2016년 12월 ‘조국카드(carnet de la patria·사진)’라는 새 신분증을 도입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 카드로 얻는 혜택이 무궁무진하다”고 발급을 부추기며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1800만명이 받아갔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은 이 조국카드는 단순 신분증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을 통제하기 위한 ‘빅브라더 카드’로, 배후 조력자는 중국의 통신장비회사 ZTE라고 1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ZTE는 최근 북한·이란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미 정부로부터 7년간 거래금지 조치를 받은 뒤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제재 해제 대가로 벌금 10억 달러를 내고 경영진을 바꾼 기업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베네수엘라가 ZTE의 ‘빅브라더 카드’ 도입을 추진한 것은 2008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 때부터다. 장기 집권을 위한 국정 장악력 제고에 부심하던 차베스는 국민 감시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중국에 시찰단을 보냈다. 견학 장소 중 한 곳이 ZTE였다.
당시 ZTE는 전자태그가 부착된 카드를 보여주며 “개개인의 각종 신상 정보를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와 연계돼 있어 소지자의 행적과 동향을 철저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를 받은 차베스는 만족해하며 ‘중국식 빅데이터 구축’을 추진했다.
그러나 고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하고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유야무야되다가 후계자 마두로가 집권한 뒤 이를 재추진했다.
마두로는 2016년 국민에게 식량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정보 업체를 고용해 수령자들의 생년월일·가족정보·고용 상태·수입·재산·의료 기록·지지 정당·소셜미디어 이용 기록 등 그야말로 한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를 차곡차곡 쌓았다.
베네수엘라 국민의 90%가 식량보조금을 받으면서 이런 정보가 빅데이터로 차곡차곡 쌓였고 마두로 정권은 이 데이터를 ZTE 기술력과 연계해 ‘조국카드’를 개발한 것.
‘조국카드’는 마두로의 집권 연장 도구로도 효과를 발휘했다. 공직자들에게서 “조국카드의 QR코드를 통해 누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다 알 수 있다”며 올해 5월 대선에서 마두로에게 투표하도록 협박을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양측의 ‘합작’은 미국의 새로운 제재를 촉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마코 루비오 미 상원의원은 “중국이 해외에 전제주의를 수출하면서 미국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