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4-05-14 11:56 PM]
중국의 문화는 신이 전해준 문화다. 중국은 자원이 풍부하여 줄곧 풍수상의 요지로 인정받아왔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명당 중의 명당은 어디일까? 오늘 풍수학자로부터 지형과 문화의 측면에서 중국 최고의 명당 3곳을 알아보겠다. 이 세 도시는 천지인(天地人)의 영기가 하나로 모여드는 좋은 곳으로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면 바람과 비가 알맞고 인재가 배출되는 탁월한 곳이다.
나라에는 국운이 있고, 시에는 시운이 있다. 도시 설계는 많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가 풍수다. 중국의 일부 도시는 풍수적 요구에 최대한 부합되게 건설되어서 이로 인해 충분히 자연환경이 적절하지만, 일부 지혜가 부족한 면도 있다. 이제 풍수학자 한 분이 자신이 배운 바에 따라 중국의 풍수 명당들을 지적해 줄 것이다. 운세의 흐름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기분 전환으로 그 수려한 풍경을 감상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
중국의 3대 풍수 명당 (인터넷 사진)
신장 지역은 예부터 중국의 외진 곳에 있으며 신비롭고 풍요한 곳이다. 과거 사람들은 이곳에 풍수와 관련된 유적들을 많이 남겨놓았는데 안타깝게도 중공의 여러 차례 정치 문화 운동들 때문에 많은 부분이 유실되고 일부만이 보존되어 내려왔다. 이 중에서도 이리 지역에 남아있는 팔괘성인 터커스 현이 가장 유명한 곳으로 손꼽힌다. 이곳은 팔괘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중심의 도시공원을 기점으로 방사상으로 퍼진 모습이다.
팔괘성은 중국의 남송시기(서기 1230년)때, 중국의 도교의 명인으로 꼽히는 구처기(邱處機)가 몽골 칭기즈칸의 요청에 따라 건설했다. 그 지세(地勢)와 숨은 뜻들은 하늘의 도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로부터 700년 후인 1992년, 구처기의 후인이 마침 풍수의 대가였고 이 후손이 팔괘성을 개조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현재 팔괘성은 중국 도시의 풍수를 연구함에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의 3대 풍수 명당 (인터넷 사진)
중국의 명당 그 두 번째 도시는 바로 쿤밍(昆明)이다. 쿤밍의 풍수는 정말 좋다. 청나라 시대의 한 도인은 시 속에서 쿤밍이 품은 영기를 노래했다. “오백 리 전지(滇池)호수 눈 안에 들어오고, 두건 잡고 하늘 보니 망망 무변이라, 북으로는 구불구불 남으로는 빨리 뻗어 고인이 기세를 만나니 급제 출사는 당연지사라.”
이 시에 묘사된 쿤밍의 모습은, 동쪽은 신마가 질주하는 형세가 무지개 같고, 서쪽은 한 마리 큰 새가 쏜살같이 날아가는 듯하고, 북쪽은 구불구불 길이 유장하다.
중국의 3대 풍수 명당 (인터넷 사진)
세 번째 도시는 원저우다. 원저우의 지세는 중국에서 몹시 중요하다. 산의 모습은 북두를 닮아있으며 도시는 자물쇠같이 단단하다. 원저우는 중국 풍수 일인자 곽보(郭浦)가 세운 곳이다.
진나라 시기, 곽보는 일찍부터 중국의 풍수 대사였다. 전쟁을 피해 원저우로 흘러갔는데 그곳에서 요청을 받고 수도(首都)를 건설했다. 그는 원저우를 건설하면서 풍수와 지질을 고려하여 도시 전체를 남쪽에 지었다. 원저우의 북쪽은 토양이 부드러워 지반이 불안했다. 원저우에는 구강(甌江)과 남계강(南溪江)이 있다. 지세를 고려하여 남쪽에 앉아 북쪽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곽보는 주변의 모든 산의 기세와 형태를 고려하여 원저우 성을 북두칠성의 형상과 똑같게 설계했다. 원저우는 곽보에게 감사하기 위하여 도시 서쪽의 산 하나를 ‘곽공산(郭公山)’이라 이름 지었다.
이 세 군데 도시 외에도 풍수의 관점에서 자신이 배운 바에 비추어 보았을 때, 베이징, 헝양(衡陽), 선전의 풍수도 원래는 극히 좋았다고 학자는 말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적지 않은 명당 터와 맥이 중공의 개발로 상실되었다. 그런 곳은 다시는 바람과 비의 적절함을 회복하지 못하고, 원래 있었던 왕성한 영기의 집합력도 회복하지 못한다. 따라서 원래는 중국에 ‘6대 풍수 극왕도시’ 설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 세 군데 풍수만이 풍수 계에서 명당 터로 인정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