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압박과 기술 유출 우려, 신종 코로나 사태에 따른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 등으로 외국기업들이 탈(脫)중국 행보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을 붙잡으라”고 지시한 중국 공산당 내부 문서가 입수됐습니다.
광둥성 후이저우시 외사판공실 명의로 된 이 문서는 ‘일본·한국과의 교류 협력 상황 및 업무 계획 제출 요청’으로 ‘특급’이라는 등급이 표시됐습니다. 최우선으로 실행해야 하는 중대 지시라는 의미입니다.
이 문서에는 “동남아 국가의 방역 상황을 잘 이용하라” “공동 방역을 명분으로 일본, 한국 등 주변 국가를 붙잡아라” 등의 지시가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후이저우시 외사판공실은 해당 문서가 광둥성에서 보내온 문서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는데요.
광둥성 정부가 한국과 일본이라는 특정 국가를 지목해 특급 지시를 내린 것은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해 두 나라 기업이 중국에 합작투자한 생산공장의 중국 이탈이 빨라지면서 지역 경제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생산 라인인 광둥성 후이저우(惠州)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지난 6월 중국에 있는 디스플레이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 무역진흥기구(JETRO)는 지난 7월에는 30개 자국기업이 중국 공장을 태국, 베트남 등으로 이전한다고 밝혔고, 애플의 최대 위탁업체인 대만 폭스콘도 생산라인 일부를 인도로 이전합니다.
삼성의 철수로 후이저우 경제에 큰 타격 후이저우시 상무부가 해당 공문에 회신한 문서에 따르면, 후이저우에 공장을 설립한 한국기업은 삼성, LG 포함 총 280개에 이르지만, 올해 미중 무역 마찰과 전염병 방역, 삼성전자 철수 등으로 전년 동기 대비 한국과의 무역규모가 77.4%, 한국에 대한 수출액이 89.5% 급감했습니다.
또한 지난 7월 말 기준 후이저우에 남은 한국 기업(합작)은 96개 입니다. 상무부 회신 문서에서 집계한 280개의 약 3분의 1수준 입니다.
후이저우에 진출했던 한국기업 10곳 중 7곳이 사업을 접었거나 철수한 셈입니다.
후이저우시는 한국과 일본을 붙잡기 위해 올해 예정된 ‘광둥성-한국 교류회’ ‘일본-광둥 경제 촉진회’에서 후이저우 산업단지를 중점적으로 홍보하고, 투자 의향을 보인 한·일 기업 방문단을 구성해 후이저우를 시찰하는 방안을 마련 중입니다.
더불어 한국에 후이저우시 경제무역 대표부를 설치하고, 한국·일본·싱가포르 기업과 기관의 현지 방문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하며, 주요 기업을 방문하거나 투자 유치 박람회를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중국 문제 전문 시사평론가 리린이(李林一)는 “후이저우시의 한 곳만으로 전체 상황을 살피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제 전망을 장밋빛으로만 전하는 중국 공산당 언론의 보도 내용과 실제 경제 상황은 차이가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리린이는 해당 공문이 ‘특급’으로 분류된 점에 주목하며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며 “외국기업의 이탈을 막고 지역의 산업 사슬을 유지하는 일이 절박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습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자 최대 수입국입니다.
코로나19(중공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 각국이 출입국을 금지하거나 격리 기간을 설정할 때, 중공 당국은 지난 5월 1일부터 한국 기업인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먼저 ‘패스트트랙’(입국 절차 간소화 제도)을 제공했습니다.
리린이는 “이 역시 중공 당국의 한국 끌어안기로 볼 수 있다”며 한국이 중공의 홍콩 국가안전법(홍콩안전법) 강행 상황에서도 침묵한 요인이자,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 중단 등 대중 압박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로 풀이했습니다.
그는 “후이저우시의 내부 문건들은 중공이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막대한 충격을 완화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