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더욱 정진해 스트라디바리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소리가 더 깊어지는 현악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현악기 제작 콩쿠르에서 한국인 우승자가 나왔다.
재이탈리아 교민 사회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26일 폐막한 ‘제15회 크레모나 국제현악기제작 콩쿠르’에서 현악기 명장 정가왕(28) 씨가 첼로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정 씨는 이번 콩쿠르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L’insostenibile leggerezza dell’essere)이라는 이름의 첼로를 출품해 당당히 1위로 호명됐다.
단풍나무로 만든 정 씨의 첼로는 행사를 주최한 크레모나 바이올린박물관 ‘무제오 델 비올리노’에 2만4천유로(약 3천100만원)에 매입돼 역대 우승작품들과 함께 박물관에 영구적으로 보관·전시된다.
이 박물관은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에 활동한 전설적인 바이올린 장인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주세페 과르네리 등이 만든 악기를 소장하고 있는 현악기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고향인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콩쿠르로도 불린다. 3년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현악기 명장들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4개 부문에서 갈고 닦은 제작 실력을 겨루는 ‘꿈의 무대’이다.
악기의 외관과 소리를 10명으로 구성된 현악기 제작 장인과 연주자들이 까다롭게 평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기준을 충족하는 작품이 없을 경우 시상자를 내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6년 시작된 이 콩쿠르의 42년 역사상 한국인 우승자가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대회까지 크레모나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거둔 최고 성적은 동메달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레모나 콩쿠르는 나이와 무관하게 현악기 명장들이 총출동하는 무대라 20대 청년이 우승을 차지한 것은 극히 드문 일로 꼽힌다. 특히,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에 비해 갑절의 제작 노력이 필요한 첼로 부문에서 우승자가 나온 것은 2009년 이후 이번이 9년 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 계산공고 졸업 후 한국외대에 진학했으나 1학기 만에 휴학한 정 씨는 2015년 크레모나 국제현악기제작학교를 졸업한 뒤 이듬해 프란체스코 토토 명장의 공방에 들어가 그에게 악기 제작을 직접 배우고, 함께 악기를 만들고 있다.
스승인 토토 씨도 2006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크레모나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해, 같은 공방에서 일하는 스승과 제자가 12년의 시차를 두고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차례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진기록을 세웠다.
정 씨의 악기는 첼로를 이루는 네 줄의 균형감, 오묘한 악기의 색깔과 깊은 소리 등을 인정받아 이번 대회에 출품된 75대의 첼로 가운데 최고상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악기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몇 년 되지 않은 데다 그동안 굵직한 대회 입상 경력도 거의 없는 정가왕 씨의 수상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졸업과 취업, 직장생활 등으로 이어지는 틀에 박힌 삶을 살기보다는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일에 도전하고 싶어 현악기 제작자의 삶을 택했다”는 정 씨는 “1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첼로를 만들었지만, 우승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꿈만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 씨는 이어 “배울 게 한참 많고,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며 “크레모나 콩쿠르 우승자라는 수식어에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 더 정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