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송악에서 한양으로 옮긴다.
나라의 중심이자 산으로 둘러싸인 천연적 조건, 평탄하고 너른 땅에 600년 앞을 내다본 계획도시를 세운다.
정도전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도시계획에 참여했고 1395년 경복궁을 중심으로 종묘, 관아 등이 자리 잡은 최중심가 ‘육조거리’가 완성된다.
오늘날 광화문 광장이 위치한 자리가 바로 육조거리가 있었던 곳이다.
이런 역사의 흔적들을 한시적으로나마 직접 눈으로 구경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서울 광화문 광장 육조거리 발굴 현장을 일반에 공개했다.
광장 한복판에 가로 세로 10m 가량의 사각형 모양 구멍이 뚫렸다. 깊이 4미터까지 파내려간 문화재 발굴 현장이다.
가장자리에서 시대별 퇴적층이 가로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가장 깊은 자연층부터 차례로 조선전기, 조선중기, 조선후기 및 구한말, 근현대, 광장의 지표면까지 켜켜이 쌓인 흔적이다.
육조거리는 조선시대 ‘이호예병형공’ 등 관청(6조)이 있던 거리를 가리킨다. 광화문에서 광화문사거리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광화문을 봤을 때 기준으로 우측(동편)에는 의정부, 한성부, 이조, 호조가 있었고 좌측(서편)에는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은 수백 년간 많은 관리와 백성들이 바삐 걸었던 조선 역사의 중심이었다.
궁궐 앞으로 넓게 뻗은 거리는 1592년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화재 피해를 보았으나 19세기 말 흥선대원군 때 재건됐다.
1910년 일본강점기 육조거리는 이름이 ‘광화문통’으로 바뀌고 해방 후 관청이 서서히 사라지다 1967년에 청헌당(옛 체신부)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육조거리가 흔적으로나마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광화문광장 조성공사가 시작되면서다. 이후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조선시대 육조거리 단면은 오는 5월 10일까지 공개되며 오는 2021년 확대개장하는 광화문 광장 지하광장으로 옮겨져 전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