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1월 19일, 경상북도 교육위원회 상황실에서는 한 어린 학생을 앞에 두고 도지사, 교육감, 지방법원장, 대학총장 등 경북의 쟁쟁한 인사들이 모였다.
당시 중학생이던 김성한군은 무려 2백여명의 눈이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1시간에 걸쳐 염력(念力)을 사용한 초능력을 보여줬다.
김군은 나침반 바늘을 마음대로 돌리는가 하면, 11시를 가리킨 시계바늘을 “돌아가라”는 수차례의 고함만으로 10시25분으로 되돌려버렸다.
또 날계란을 손에 쥐고 있다가 40분만에 병아리로 부화시키는 능력도 보였고, 두꺼운 책 속에 얇은 종이 한장을 끼우고 눈으로 응시해 종이만 태우는 현상도 보여줬다. 김군이 손에 쥐고 있던 날콩 20여개 중 6~7개는 3~4일후 3~15cm 가량 싹이 튼 결과도 나왔다.
특히 초능력 시범 전날 경북 영덕군에서 김군과 같이 올라온 김군의 담임교사는 “오늘 아침 세면때 김군이 자신의 집에 있던 수건과 치솔을 공간을 초월해 가져왔다”고 증언해 참석자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당시 김군의 초능력은 바로 그해 KBS TV에 출연한 유리겔라(이스라엘)의 초능력을 한낱 마술로 간주하려던 한국의 물리학자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이후 김군은 우리나라 정보기관으로부터 학자금 일체 등을 대주는 조건으로 대북공안 업무에 능력을 사용해줄 것을 제안받았기도 했다.
이미 당시는 미국 CIA와 구소련의 KGB가 초능력자들의 텔레파시, 투시, 최면술 등을 이용해 ‘심령전쟁’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제의는 김군 부모의 완강한 반대로 취소됐고 김군 역시 스스로 사람들의 관심권 밖으로 멀어져 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95년 3월 4일, 성인으로 성장한 김성한씨는 84년 실험 이후 또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그는 경북의 지역신문인 ‘영남일보’ 취재진을 포함해 7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 4분만에 감씨의 싹을 틔워 보였다.
당시 취재를 한 변성석 기자는 “김씨의 손바닥에는 어떤 다른 사술(邪術)이 끼여들 여지는 없었으며, 입회인 중 다른 4명이 감싸쥐고 있던 똑같은 감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후 2012년,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현상들의 사실적 근거를 확인하는 프로그램인 ‘이영돈 PD의 논리를 풀다’는 17년만에 김성한씨를 찾아서 실제로 초능력자인지 물어봤다.
당시 초능력을 확인했던 영남일보 기자와 동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어릴 때는 실제 초능력을 썼다고 말했으나 지금은 그 능력이 모두 없어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어릴 때는 잡생각이 없어 초능력 그 자체에 집중하니 능력이 발생했는데, 성장하면서 이런 저런 잡생각이 많아지면서 집중력 부족으로 소실됐다”고 전했다.
김성한 씨는 “사람은 누구나 우연찮게 초능력을 사용 할 때가 많다. 본인들이 모르는 것일 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