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봄, 주한 미군 상병 그렉 보웬(Gref Bowen)은 여자친구와 함께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보웬은 여자친구와 커피를 마시려고 코펠에 물을 끓이기 위해 주변에서 돌을 모았고 그때 여자친구가 주워온 ‘이상한 돌’을 보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는 갑자기 허리를 숙여 이 ‘이상한 돌’을 집어들더니 돌덩이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여자친구에게 “이것 봐!”라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보웬이 발견한 ‘돌덩이’는 세계를 놀라게 한 ‘전곡리 주먹도끼’였다. ‘전곡리 주먹도끼’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일반인들이 그리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유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웬은 고고학을 전공하다 학비를 벌기위해 미군에 입대한 병사였기 때문에 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
‘전곡리 주먹도끼’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자 전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기존 고고학계의 학설은 양날주먹도끼(아슐리안계 도끼)은 서양에서만, 외날주먹도끼는 동양에서만 발견된다는 구석기 문화 ‘이원론’이었는데, 그렉의 발견 이후 이 이론이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기존의 학설은 양날주먹도끼를 사용하는 유럽의 구석기 문명이 아시아보다 더 우월하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었는데 전곡리 주먹 도끼의 출현으로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이후 연천 진곡리에서는 더 많은 양날주먹도끼가 발견됐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이선복 교수가 “보웬이 전곡리 유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경지정리를 하면서 중요한 유적이 모두 사라질 뻔했다”고 보웬의 발견을 평했을 정도로 보웬이 발견한 ‘돌덩이’는 역사적인 발견이었다.
이후 보웬은 한국에서의 유물 발견 공로로 세계 고고학계에 알려져 제대 후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각종 유적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보웬은 훗날 “한국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 두 가지를 주었다. 그것은 전곡리 구석기 유적과 나의 아내”라는 인터뷰를 남긴 바 있다. 보웬의 아내는 당시 동두천 군부대의 여가수였던 한국인 여성 이상미(상미 보웬) 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