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시대의 거울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에는 현대에 만들어진 신조어나 유행어도 있지만 조상 대대로 써온 유서 깊은 표현이 있다.
유교국가였던 조선 이전에 고려와 신라·백제·고구려 등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국가들은 천년이 넘도록 불교문화권에 속했다.
말과 글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지만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생명력을 지닌 단어 몇 개를 소개한다.
어쩌면 천 년 전 당신의 전생에 벗들과 이야기하며 사용했던 단어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수라장
아수라는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신의 혼혈인 반신으로 전쟁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수라는 하늘을 다스리는 제우스 격인 제석천 혹은 인드라와 자주 전쟁을 벌였는데 ‘아수라와 인드라가 싸운 마당(마당 장場)’을 아수라장이라고 했다.
인드라는 전쟁터에 나가는 여러 신에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 전쟁터가 아수라의 장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끔찍하게 흐트러진 사고 현장이나 싸움 등으로 큰 혼란에 빠진 곳을 ‘아수라장(阿修羅場)’, 줄여서 ‘수라장’이라고도 한다.
건달
건달(乾達)은 불교용어 ‘건달바(乾達婆)’에서 유래했다.
건달바는 수미산 금강굴에 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음악의 신이다. 술과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고 향기(香)만 먹고 산다.
당시 인도에서 건달바는 음악인이나 배우 등 예능계에서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됐지만, 예인을 천시했던 우리나라에서는 뜻이 변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됐다.
건달은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거나, 가진 것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판사판
‘이치를 판단한다’는 뜻의 ‘이판(理判)’은 수행에 전념하는 승려를 가리키고 ‘일을 판단한다’는 뜻의 ‘사판(事判)’은 절의 살림을 맡아 하는 승려를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불교 억압정책으로 시행돼 승려들은 성안 출입이 금지됐다.
수행하는 이판승은 산에 머물며 수행을 계속했고, 사판승은 종이를 만들거나 산성을 쌓으며 연명했다. 신분은 둘 다 천민으로 전락했다.
당시에 승려가 된다는 것은 끝장난 인생과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이판사판’은 ‘막다른 궁지에 몰려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의 뜻을 품게 됐다.
일설에 따르면, 무슨 일이든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이론과 실천을 같이 경험해야 한다는 의미였는데 부정적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야단법석
우리가 흔히 쓰는 ‘야단법석을 떨다’도 불교에서 온 말이다.
법석은 원래 설법이나 독경을 하는 엄숙한 법회를 뜻하는 말로 앞에 어떤 한자어가 붙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야외에서 단을 쌓아 놓고 크게 베푸는 설법 자리’라는 원래의 뜻이 있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은 아니다.
야단법석(惹端法席)은 어떤 일의 발단을 지칭하는 ‘야기사단(惹起事端)’의 준말인 ‘야단(惹端)’이 법석과 합쳐지며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군다’는 뜻이 됐다.
그래서 요즘에는 ‘야단스럽다’ ‘야단맞다’ ‘법석거리다’도 시끄러움을 뜻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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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지금까지 쓰이는 옛말들은 아주 많다. 여러분이 아는 단어들을 댓글에 적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