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농촌 사람들의 실제 삶과 사회 부조리를 그린 영화가 중국에서 흥행 가도를 달리다 갑자기 막을 내렸다. 중국 내 모든 영화관과 OTT(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돌연 사라졌다.
이 영화는 리루이쥔 감독의 ‘먼지 속으로 돌아가다'(隱入塵煙·Return to dust)이다.
27일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 등에 따르면 영화 ‘먼지 속으로 돌아가다’가 지난 12일 전후로 돌연 전국 상영관에서 내려졌다.
영화는 간쑤(甘肅)성 한 농촌마을에서 사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노총각 남성과 다리에 장애가 있는 여성이 만나 가정을 꾸린다. 두 사람은 어려운 형편으로 마을 사람들과 친지들의 조롱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당국의 재개발 정책으로 집을 빼앗겨 거리에 나앉게 된 부부는 어떻게든 농사를 짓고 살고자 진흙으로 직접 집을 짓는다.
겨우겨우 살아가던 때 남자주인공의 형이 찾아와 그에게 부탁을 한다. 정부가 재개발로 지은 아파트를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분양하기로 했는데 4천만 원짜리 집을 400만 원이면 살 수 있다면서 그에게 명의만 빌려 달라고 했다. 형 본인은 가장 가난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의 명의가 필요했다.
명의를 빌려준 남자주인공은 언론에 가장 가난하지만 좋은 집에 당첨된 사람으로 둔갑했다. 그러나 실제 이득을 본 건 명분을 챙긴 정부와 아파트의 진짜 주인인 주인공의 형이었다.
남 좋은 일만 한 부부에게 더 큰 시련이 찾아온다. 어렸을 적부터 지병이 있었던 아내는 병세가 악화돼 결국 숨을 거둔다. 일을 하느라 잠시 집을 비웠던 주인공은 아내가 죽자 큰 상실감에 빠져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난다. 그 뒤로 부부가 함께 지은 흙집이 무너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중국 농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제작비가 200만위안(약 4억 원)밖에 들이지 않은 저예산 영화였다. 그러나 지난 7월 개봉 후 중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1억1천300만 위안(약 225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시진핑 3연임 걸림돌 우려? 중국 사회 그늘 드러나
이 영화는 중국의 대표적인 사회 문제인 빈부격차, 고령 독신자 문제, 지역 재개발을 명목으로 한 토지 강제수용 등을 이야기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인기가 높아지자 중국 공산당 안팎에서는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을 비판하고 당의 빈곤퇴치사업의 위업을 전면 부정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때문인지 영화는 곧 상영을 중단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중국 쿤룬처(昆仑策)연구원 소속 정옌시(鄭晏石) 선임연구원은 “영화 제작자는 어떤 입장이고 누구를 대변하는가.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반복된 조작을 한 이 영화의 숨은 의도는 무엇이냐”며 “검열 부서는 이런 엉망진창인 영화를 어떻게 심사한 것이냐”고 날을 세웠다.
이 영화가 돌연 상영 중단한 것은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이 사회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 있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진핑 총서기의 3연임을 확정지을 것으로 보이는 당 대회(10월 16일 개막)가 코앞인 시점에서 중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영화가 흥행할 경우 시 주석의 업적 찬양이 어려운 것은 물론 중국 공산당에게도 부담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부 중국 누리꾼은 이 영화가 중국 농촌의 매우 생생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이 이를 가만두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누리꾼은 “우리의 모든 영화, 연극, 예술 작품들이 이유도 모르게 내려지는 것이 아쉽다”며 “몇 년 후 모든 것이 강제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이 땅에는 토론할 수 없는 사람,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