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부터 중부지방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인해 반지하 거주자들의 안전 문제가 대두됐다.
이런 가운데 침수된 지역의 반지하 거주자들이 수압으로 현관문이 안 열려 위급한 상황에서 ‘방범창‘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사연을 알렸다.
지난 11일 인터넷 커뮤니티 ‘도그드립’의 익명 게시판에는 ‘침수지역에서 반지하 거주하던 사람이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A씨는 집이 침수되자 방범창 사이로 키우던 강아지를 먼저 내보내고 물이 흘러넘치는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사고가 정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안간힘으로 (현관문을)밀어붙이는데 꿈쩍도 안 하는 거에 정신 줄 놓게 되더라. 내가 그래도 키가 185㎝에 몸무게 113㎏인데”라며 “여기서 죽어야하느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때 A씨는 집에 터보 토치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방범창에 불을 쏘고, 펜치로 잡아 휘어서 겨우 탈출했다”며 “그때 물 높이가 가슴과 쇄골 사이까지 찼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A씨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반지하 거주하는 이들은 언제 어떻게 침수될지 모르니 항상 배터리형 그라인더와 토치, 펜치 등 이런 거 집에 두고 살아라. 배터리도 충전해놓고”라고 조언했다.
만약 A씨가 방범창을 제때 열지 못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집중호우 등으로 집이 침수될 경우 수압 때문에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때 반지하 거주자의 유일한 탈출구는 지상이 보이는 작은 창문인 경우가 많다.
평소 방범창은 창살이 촘촘하고 튼튼해 외부 침입을 막아주는 순기능을 하지만 수해 때는 다르다.
앞서 8일 기습적인 폭우로 신림동 빌라 반지하에 거주하던 여성 A 씨(47)와 그의 언니 B 씨(48), 그리고 A 씨의 딸(13)이 고립돼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함께 살던 모친은 병원 진료 때문에 당시 집을 비웠으며 B 씨에게는 발달장애가 있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참변을 당한 이 장애인 일가족은 수압 때문에 현관문을 열 수 없었다. 창문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결국 방범창을 제거하지 못해 숨졌다.
운 좋은 사례도 있다.
같은 날 서울 동작구 성대시장 인근 주택가 골목의 반지하 주택에 살던 80대 부부는 물이 차서 문이 안 열리고 금속제 방범창을 뜯을 수 없었음에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부부는 힘껏 “살려 달라”고 외쳤고, 1층 집주인 여성이 방범창을 뜯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다행히 2층에 살던 60대 남성이 뛰어와 방범창을 뜯어내 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경기도 군포시 빌라촌에서도 지난 8일 반지하가 침수돼 반지하 방에 고립됐던 사람들이 경찰관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지난 8일 오후 11시 10분께 경기남부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황실에는 “집에 물이 차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다급한 목소리의 신고가 접수됐다.
군포경찰서 금정파출소 소속 정재형 경장 등 4명은 출동 지령을 받고는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했다.
경찰들은 주변에 있던 각목과 철근을 이용해 지렛대 원리로 이 방의 방범창을 뜯어낸 뒤 창문을 깨고 A씨를 구조했다.
당시 군포의 시간당 강수량은 무려 112.5㎜(8일 오후 10시 26분~11시 26분)로, 도내 최대를 기록했다.
방범창이 수해시 대피를 막는 위험한 요소가 된다고 해서 방범창을 아예 제거할 수는 없다.
소방방재학과 전문가들은 “옛날과 다르게 안에서 열 수 있게 여닫이식 잠금장치를 단 현대식 방범창이 있는데, 이것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경기연구원은 2020년 ‘반지하의 거주환경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반지하 주택 진입부에 차폐문을 설치하고 건물밖에 빗물유입 방지시설(물막이판 등)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며 “반지하 주택 밀집지역에 배수처리장·빗물펌프장 등을 증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