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머니가 버려진 아기를 데려와 키웠다. 성큼 자란 소녀에게 국숫집 여주인이 날마다 국수를 주었다. 그러다가 여주인은 소녀의 팔에 있는 커다란 점을 보곤 깜짝 놀랐다.
이 이야기는 몇 년 전에 일어난 실제 이야기다.
유계촌은 도시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끼니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살고 있었다.
그 마을에 사는 이하화라는 할머니(65세)가 오래 전 남편을 떠나 보내고 홀로 외롭게 살고 있었다.
가난해서 힘든 삶을 이어가던 할머니가 어느 날, 산에 있는 남편의 무덤을 찾았다. 그리고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어찌 나만 혼자 두고 떠났소?”라고 푸념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무덤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다. “머지않아 누군가 당신과 함께하게 될 거요!”
“영감! 당신이 내게 말한 거요?” 할머니가 놀라서 물었지만, 무덤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기가 환청을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밤이 늦어 할머니는 산길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 왔다. 잠시 후, 할머니는 꽃무늬 보자기에 싸인 아기를 발견하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아무도 없어요!” 한참을 기다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누군가 아기를 버린 것이었다.
아기를 안아 든 할머니는 문득 무덤에서 들려온 말이 생각났다. “머지않아 누군가 당신과 함께하게 될 거요.” 할머니는 아기를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고 여기며 기뻐했다.
할머니는 아기에게 이수정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정성스럽게 키웠다. 날마다 사람들에게 젖동냥을 하느라 고생이 심했지만 결코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에 아기가 배가 고프다고 보채면 젖 대신 따뜻한 죽을 먹였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아기의 울음소리조차 할머니에게는 즐거운 음악처럼 들렸고, 집안은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할머니는 농사를 지을 때도, 마실을 갈 때도 언제나 아기를 데리고 다녔다.
눈 깜빡 할 사이에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온갖 고생을 다해 키운 아이가 어느덧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됐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면 학비를 마련해야 했는데 할머니에게 손녀의 학비는 무척이나 큰돈이었다.
손녀의 교육을 위해 할머니는 고향 유계촌을 떠나 도시로 갔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폐품을 주워 파는 것이었다. 손녀 수정이도 훌쩍 자라 철이 들어 할머니를 도왔다.
반년 동안 할머니는 동전 한 푼 쓰지 않고 돈을 모았다. 만두와 짠지만으로 끼니를 때워도 할머니는 손녀만 생각하면 행복했다.
어느 날 저녁, 할머니와 손녀가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국숫집 앞을 지날 때 할머니가 손녀에게 말했다. “수정아! 오늘은 너와 처음 만났던 날이란다. 기념으로 할머니가 고기국수를 사주마.”
“할머니, 저는 만두와 짠지만으로도 충분해요.” 똑똑한 손녀는 할머니가 힘들게 번 돈을 쓰는 게 싫어서 극구 사양했다.
“그동안 네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구나. 이제부터 오늘을 네 생일로 정하자. 국수는 할머니가 네게 주는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렴.”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와 손녀는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장! 고기국수 한 그릇을 줘요, 국물 넉넉히 해서.” 할머니의 말에 주인이 따스한 음성으로 답했다. “알았습니다. 우선 앉으세요.”
몇 분 후 주인은 고기국수 한 그릇을 가져 왔다.
“할머니, 먼저 드세요.”
“아냐, 할미는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단다. 국물만 마시면 돼.”
국숫집 여주인은 그들의 모습에 감동해 따로 국물을 가져다 주며 말했다. “국물은 얼마든지 있으니 맘껏 드세요.”
“고마워요!” 할머니가 말했다. 여주인은 두 사람의 그릇이 비워지면 다시 뜨거운 국물을 가져다 주었다. 수정이가 할머니에게 국수를 덜어 드리려 하자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는 국숫값을 주려고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자 주인은 “됐습니다. 두 분은 오늘 저희 가게를 찾은 88번째 손님이거든요. 저희 가게는 매일 88번째 손님께는 음식 값을 받지 않는답니다. 앞으로도 그럴 테니 꼭 다시 찾아주세요.“
손녀 수정이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그날 이후 수정이는 가게에 들어가는 손님의 숫자를 세다가 88번째가 되면 들어가서 국수를 먹었다. 물론 공짜였다.
국숫집 주인은 정말 착한 사람이었다. 손님이 없으면, 친지들에게 연락해서 가게로 오도록 하여 87명을 채우고 수정이가 88번째 무료 손님이 되도록 했다. 수정이와 할머니는 마음씨 고운 여주인과 점점 가까워졌다.
날씨가 더워지자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졌다.
어느 날, 소녀의 팔에 있는 커다란 점을 발견한 국숫집 주인이 눈을 크게 뜨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손녀가 몇 살이죠?”
“여섯 살이에요.” 할머니의 대답에 여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물었다. “이 아기 부모는 집에 없나요?”
할머니는 왜 국숫집 여주인이 그렇게 묻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과 손녀에게 친절한 착한 마음의 소유자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정이가 국숫집 여주인의 친딸이었던 것이다.
여주인은 하루 세끼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한 남자와 결혼을 했고 어려운 중에도 첫아이가 태어났다. 딸이었다. 시어머니는 어두운 표정으로 “아들이 아닌 딸이라니… 실망스럽구나”라며 그녀를 나무랐다.
부부는 둘째를 낳았다. 역시 딸이었고, 팔에는 커다란 점이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아들도 아닌 딸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시어머니는 태어난 지 열흘도 안 된 아이를 며느리 몰래 유계촌 입구의 황량한 들판에 버렸다.
“아아! 엄마.” 친엄마를 만난 수정이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 팔에 있는 커다란 점을 다시 쳐다보았다.
“정말 미안하구나.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주려무나.” 여주인은 수정이를 꼭 끌어안았고, 두 사람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여주인은 소정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할머니 집에 머물도록 했다. 할머니는 손녀를 돌보며 행복한 노년을 보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소정이의 어머니는 유해를 먼저 가신 할아버지 옆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