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말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을 쏟고 그 사랑으로 자란 자식은 또 자신의 자식에게 사랑을 쏟는다. 다들 내리사랑을 자연의 섭리라고 받아들인다.
뇌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29세 청년이 알츠하이머 말기 할머니를 지극히 보살피는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부산에 사는 29살의 정한 씨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정한 씨가 10살 되든 해 어머니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2년 후 아버지마저 급성 간 경화로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가 어린 정환 씨를 거두어 키우셨다.
어린 손자를 위해 시장에서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던 할머니는 혹여라도 부모 없이 자라는 손자가 잘못된 길로 빠질까봐 등굣길 친구가 되기도 하고,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공부는 해야 한다며 정한 씨를 대학공부까지 마치게 했다.
어느 날은 마을회관에서 다 같이 회비를 내어 자장면을 시켰다. 손자 생각에 자장면을 차마 먹지 못하고 집으로 가지고 오신 할머니.
하지만 이미 면은 퉁퉁 불어 있었다. 이런 자장면을 누가 먹냐며 투정을 부리며 먹지 않는 정하 씨를 보고 할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어른이 된 정한 씨는 이제야 알게 됐다고 했다. 불어터진 자장면 한 그릇이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 밥상이었다는 것을.
2016년, 할머니는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말기 판정을 받았다. 할머니의 치매의 주된 증상은 거부증, 망상, 공격적 성향, 단기 기억력 상실이다.
할머니는 손자가 정성을 다해 차린 밥상을 보고 “안 먹어. 밥 안 먹는다고”하며 투정을 부리기 일쑤고 자신의 지갑을 허락도 없이 가져갔다며 화를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한 씨는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할머니가 밥을 안 먹는다고 하면 정한 씨는 1000원짜리 한 묶음을 손에 쥐여드리며 “할머니, 제가 돈 벌어 왔습니다. 천만 원입니다. 이제 우리 부자예요”라는 말로 할머니의 마음을 누그려뜨려 식사를 하게 했다.
할머니의 치매 증상은 점점 심해져 이젠 대소변을 본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한 씨가 기저귀를 가는 동안 욕설까지 퍼붓는 할머니지만 손자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방울을 보고는 “잘해 줘서 고맙다. 사랑한다”며 손자를 기억하는 할머니의 손을 정한 씨는 놓을 수가 없다.
정한 씨는 할머니의 거부증이 시작되면 마음이 열릴 때까지 두드리고 두드리며 기다린다.
그래도 시간 맞춰 먹어야하는 약은 마냥 기다릴 수가 없다. 할머니 약을 먹이기 위해 설득하고 또 설득하다가 힘들어진 정한 씨는 두통을 못 이겨 바닥에 드러눕고 만다.
한 움큼의 약을 먹어야 통증이 가라앉는 정한 씨는 할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던 그해에 악성 뇌암 판정을 받았다. 악성 뇌암은 3년 내 재발하면 50% 이상이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급성간경화로 돌아가시고, 손자인 나까지 뇌암이라면…” “할머니께 치매가 와서 그 슬픔을 더 겪지 않는 게 어떻게 보면 다행입니다”라는 정한 씨의 말에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났다.
어릴 적 철부지 소년이었던 자신을 돌봐주신 할머니께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리고 있는 정한 씨는 “할머니, 우리가 행복하지는 않지만, 항상 감사하며 살아갑시다”라고 말하며 할머니 병이 천천히 진행되기만 바란다.
오랜만에 할머니와 부산 바다를 찾은 정한 씨가 “할머니, 한번 웃어봐”라고 하자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가 “할머니, 아빠도 잊지 말고 정한이도 잊지 말고… 이젠 내가 할머니 버팀목이 되어 줄게”라고 말하자, 점점 모든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전하는 한마디는 “굶지 마라” “굶주리지 말고 꼭 밥을 챙겨 먹어. 알았어? 건강하게 살아. 꼭 부탁 한다”라는 말이다.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두 팔로 하트를 그리며 “구독”을 외치고 “좋아요”를 외치는 정한 씨를 보며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