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느 성공한 사업가에게 게으른 아들이 있었다. 그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들을 이대로 두면 인생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로서 깊이 고민한 그는 아들에게 ‘돈의 가치’를 가르치기로 하고 조용히 아들 루이를 불렀다.
“오늘부터 밥값을 내렴. 적은 액수라도 괜찮다. 그러나 밥값을 내야 너와 함께 식사할 거란다.” 루이는 놀랐지만,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다음날 루이는 어머니에게 사정을 말해 받은 돈으로 아버지에게 밥값을 내고 함께 식사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번 돈이 아님을 알고 정원 우물에 그 돈을 던지게 했다. 루이는 순순히 우물에 돈을 던졌다.
그날 밤 아버지는 아내와 손자를 끔찍이 아끼는 할머니에게 “루이에게 인생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며 돈을 주지 말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다음날 루이는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초조해진 루이는 자신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없어지자 결국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카트를 정리하면 3달러를 주겠다는 영업 사원을 만나 곧장 일을 시작한 루이. 평생 처음으로 열심히 땀 흘려 일을 했다.
일을 마친 루이는 자기 힘으로 번 3달러를 아버지에게 자랑스럽게 건넸다. 그런데 돈을 받은 아버지는 또, 우물가로 아들을 데려갔다. 당황한 루이가 갑자기 소리쳤다. “아버지, 저는 그 돈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일했어요. 제발 그 돈을 우물에 던지라고 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아들을 보며 밝게 웃었다.
“네가 정말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함부로 버린다는 게 고통스럽지 않니, 그렇지? 아버지는 네가 그걸 알게 되길 바랐다. 그동안 너는 공짜로 얻은 돈은 소중히 여기지 않고 버렸단다. 이번 기회에 네가 번 돈의 의미를 알았으면 좋겠구나.”
이 일화에서 루이는 실제 경험을 통해 변화의 첫걸음을 디디고 있다. 게으른 자녀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 고함을 치거나 매를 들어 단번에 습관을 고쳐주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자발적인 변화가 아니라면 오래가기 어렵다.
또한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자란 아이들은 땀과 노력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알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자란 아이는 ‘한 끼 식사’가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간 노력을 공감하기 어렵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원할 때마다 가진다면 진정한 성취감도 맛볼 수 없다. 이처럼 자녀에게 물질적 풍요의 즐거움만 가르치고 일할 권리를 빼앗는다면, 바로 게으름을 가르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삶이 편안하길’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편안함’을 원한다면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물고기’를 제공하기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이포크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