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4천만 원.
총상을 입은 한국인 선장을 한국으로 이송하기 위해 필요한 ‘에어 앰뷸런스’의 대여비였다.
국가기관의 보증이 꼭 필요했지만, 우리 외교부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때, 자신의 이름이라도 걸고 에어 앰뷸런스를 대여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국종 교수였다.
지난 1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상에서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을 모두 구출했던 ‘아덴만 여명 작전’이 다뤄졌다.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 해군의 김규환 대위가 활약했다. 여기에 이국종 교수까지 힘을 합쳐 작전 5시간 만에 선원을 모두 안전하게 구출했다.
당시 해적들은 우리 작전이 시작되자 석해균 선장에게 총 6발을 쐈다.
석해균 선장은 곧바로 오만 병원으로 이송됐고, 수술을 위해 이국종 교수가 파견됐다. 그러나 석해균 선장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결국 그를 한국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문제는 석해균 선장을 한국으로 이송하기 위한 에어 앰뷸런스였다. 당시 스위스에 딱 한 대가 남아 있는 에어 앰뷸런스를 대여하려면 4억 4천만 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외교부의 승인은 쉽지 않았다. 이에 이국종 교수는 “내 이름이라도 걸고 빌리겠다”고 말하며 보증을 섰다.
이국종 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모르겠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무조건 해결해야 하고, 석해균 선장이 잘못되면 나도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국종 교수의 마지막 승부수는 결국 통했다.
석해균 선장은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5일 뒤 의식을 되찾았다.
이국종 교수는 “저는 목숨을 걸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대원들은 목숨을 걸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서 일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가 버티는 가장 큰 힘은,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 덕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