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몸담았던 병원을 떠나기로 한 의사가 동료 교수들이 준비한 환송회에 참석했다가, 그 직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지난달 30일 방송된 MBC 시사프로그램 ‘실화탐사대’에서는 ‘버려진 의사’ 편으로 고(故) 고원중 교수의 죽음을 조명했다.
고 교수는 결핵·비결핵 항산균 폐질환 분야에서 인정받는 의사로, 평소 환자와 연구만 생각했을 만큼 열정이 넘쳤다고 한다.
그가 속한 호흡기내과 교수들은 호흡도 잘 맞고 잘 지냈지만, 2010년부터 갈등이 생겼다. 특히 메르스 사태 6개월은 그의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간이었다.
정부에서 메르스 관련 지침이 내려왔는데, 한 선배에게 ‘지침을 따라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가 오히려 선배에게 ‘네가 논문 좀 쓴다고 지금 사람 무시하는 거냐’라는 소리를 들은 것.
그때부터 따돌림이 시작됐고, 동료 교수들은 고 교수가 메시지를 보내는 중간에 단톡방을 나가버리거나, 공지사항 말고는 말하지 말라고 하고, 고 교수의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평소 활기 넘치던 고 교수는 그때부터 웃음을 완전히 잃었다. 그럼에도 동료들을 비난하지 않았다고 아내 이윤진 씨는 말했다.
게다가 병원에서 고 교수가 감당해야 하는 업무량은 계속 늘어갔다. 엄청난 업무량을 처리하기 위해 주 100시간 가까이 PC 앞에 앉아 있는 등 쉬지 않고 일해 허리통증을 달고 살았다.
지속된 설득으로 고 교수는 어렵게 해당 분야의 교수를 충원받지만, 병원이 새로 충원된 의사에게 전공하지 않은 진료까지 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 교수는 큰 죄책감을 느꼈다.
결국 고 교수는 아끼는 후배가 괴로워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다행히 2개월 후 새로운 병원의 이직이 결정됐다.
모든 것이 나아질 것 같았던 그때, 문제가 된 건 2019년 환송회였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흡기내과 주최로 열린 환송회에 참석한 고 교수는 약속장소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약속 시간보다 10~20분가량 늦게 하나둘 나타난 동료 교수들은 자리의 주인공인 고 교수보다는 자신들의 근황에 관심이 더 많았다.
공로패를 받은 고 교수가 인사를 해도 침묵만 흘렀고, 심지어는 계약이 만료돼 나가는 다른 행정 직원의 환송회를 하겠다고 했다.
그곳에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낀 고 교수는 공로패를 챙기지도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가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병원의 다른 과 의사들까지 나서 진술서를 제출했지만 병원은 산업재해로 인한 보상금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유족은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