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빼달라고 안내방송했던 아파트 소장, 몸 덜덜 떨며 “미안하다”

By 이현주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포항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다가 실종된 주민 9명 중 2명이 생존하고, 7명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사고 당시 차를 빼라고 안내 방송을 했던 관리소장은 “미안하다”라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6일 중앙일보는 경북 포항 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근무 중인 관리소장 A 씨를 만났다.

A 씨는 힘겹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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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날 오전 4시경 비바람을 뚫고 출근해 30분 뒤 안내방송을 했다.

“102동 유치원 놀이터 쪽에 주차된 차량은 이동해주십시오. 지하 주차장은 괜찮습니다.”

이후 폭우를 뚫고 주변 상황 점검 차 순찰을 나섰다.

순찰 도중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다고 느낀 A 씨는 다시 돌아와 5시 20분쯤 안내방송을 했다.

지하 주차장에도 물이 찰 수 있으니 차량을 지상으로 옮겨달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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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리사무소에는 A 씨 이외에도 시설과장, 경비원, 입주자대표회의 등 4명이 더 있었다.

A 씨는 안내 방송 후 차량을 통제하기 위해 나섰고, 시설과장은 2차례에 걸쳐 다시 안내방송을 했다.

A 씨는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침수가 우려되니 지하 주차장 차량을 옮겨달라는 내용의 방송이었을 거다”라고 했다.

아파트 인근 하천인 냉천이 폭우로 흘러넘친 건 오전 5시 50분.

하천이 넘치며 삽시간에 엄청난 양의 물이 아파트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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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이 완전히 잠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A 씨는 경황이 없어 119 신고하지 못했지만, 그즈음 구급차 사이렌이 들렸다고 한다.

하지만 하천이 범람해 진입로로 흘러들었고, 구급차가 들어서지 못했다.

몇 마디 말을 내뱉을 때마다 A 씨의 몸과 목소리가 떨렸다고 한다.

그는 ‘관리소장의 안내방송이 인명피해를 야기했다’라는 일부 여론에 대해 역할에 충실해지려 했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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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이후 상황을 묻자 A 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미안하다. 더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라며 발걸음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은 이와 관련해 “관리사무소 측은 태풍 상황에서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려 최선을 다했다”라며 “안내 방송은 주민 재산 피해를 막으려는 시도였을 뿐이니 책임 제기는 잘못됐다”라고 강조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6일 오후 8시 15분부터 이날 0시 35분 사이 구조된 9명 가운데 39세 남성과 52세 여성이 생존한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70세 남성 1명, 65세 여성 1명, 68세 남성 1명, 신원 미상의 50대 남녀 각 1명, 20대 남성 1명, 10대 남성 1명 등 7명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