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길병원 소아과 전공의 신성록 씨는 당직 근무 중 숨졌다.
일주일 평균 110시간을 일했던 신 씨는 숨진 당일에도 35시간째 일하다 쓰러졌다.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이 심해지면서 인력이 부족해 생긴 일이었다.
내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전국 소아청소년과 정원 199명 중 지원인력은 33명.
전국 8개밖에 없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중 한 곳인 길병원은 의료 인력이 모자라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 9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인력부족으로 사회안전망이 위협받고 있다”는 성명까지 냈다.
의사들은 왜 이토록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게 됐을까.
저출산 여파와 높은 업무강도에도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는 2019년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
의료계에서는 그 원인으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을 꼽는다.
당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환아 4명이 심정지를 일으키고 80여 분 만에 전원 사망했다.
의사 4인과 간호사 3인에 대한 재판으로 이어졌고, 의료진 전원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 여파는 상당했다.
고의적 위해가 아닌 일반적인 진료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 형사 재판까지 이뤄지자, 그나마 근근히 버티던 소아과 지원율이 추락하게 됐다는 것.
아픈 아이 때문에 예민해진 보호자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보호자에게 설명하던 중 뺨을 맞는 걸 목격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픈 아이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게 때린 이유였다.
글쓴이는 “소아과 오는 보호자들은 대체로 예민하고 화가 나 있다. 말 못하는 애기를 죽어라 울고 그 난관을 뚫고 진단 내려서 화난 보호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하는 극한 직업이다”라며 “이번 전공의 지원도 박살 났던데 소아과 샘들한테 제발 그러지 좀 말아주세요”라고 적었다.
한 의료인은 이런 폭행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폭언과 무례함은 상상 이상이라고 토로했다.
보호자가 던진 약봉지나 처방전에 맞는 일은 물론, 멱살을 잡히거나 협박당하는 일도 반복된다는 것.
그는 저렴한 의료수가가 보호자들의 갑질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편의점 커피보다 싼 수가에 보호자들까지 그 진료를 ‘몇백 원짜리’로 보는 상황에 자괴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개원의들이 맘카페 등의 부당한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일부 지역 맘카페들이 개업한 소아청소년과에 광고를 요구하고, 이를 거절하면 병·의원을 폄훼하는 게시글과 댓글로 괴롭힌다고 한다.
소송의 위험과 갑질, 고강도 업무와 저출산의 영향 등 이런저런 이유로 지난 5년간 폐업한 소아과는 600여 곳에 달한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사라지면서, 의료 공백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지난 8월, 맹장염 수술이 필요했던 세 살배기는 광주에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200km 떨어진 대전 충남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서울과 수도권 안에서도 소아환자 진료를 받아 주는 대학병원이 사라지고 있는데 지방은 어떻겠냐”며 “정부는 아이들이 죽어 나가야 대책에 나설 건가. 정말 큰일”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