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비용 내달라” 베트남의 노골적인 요구에 진땀 흘리는 현지 한국 기업들

By 이서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강화를 위해 출·퇴근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백신 비용을 기업에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출감소 등으로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은 베트남 정부의 노골적인 요구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4일 현지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한국기업들에 전화 등을 통해 백신 펀드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휴대폰 가입자들에게는 백신 기금 마련에 동참해 달라며 계좌 번호를 공지한 문자까지 보냈다.

지난달 27일 베트남 하노이에 진출한 한국 경제인들이 코로나19 기부금을 현지 당국에 전달했다. | 연합뉴스

호찌민에 있는 A사도 최근 현지 정부 관계자에게 백신 기금을 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A사 관계자는 “돈을 주면 우리 직원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장담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로 인한 매출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요구까지 해대니 속이 터질 지경”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롱안과 동나이 지역에 위치한 생산법인들도 비슷한 연락을 받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베트남 공장 | 연합뉴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보장한다고 해서 베트남에 들어오면서 이같은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면서 “펀드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어떤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 몰라서 돈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수의 한국 기업 공장이 자리 잡은 북부 빈푹성에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검사 비용을 전액 부담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기업 뿐 아니라 공공기관도 같은 요청을 받았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당국에 재원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기업들로부터 지원을 받으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면서 거듭 지원을 요구했다”면서 “성의 표시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정보기술(IT) 매체 샘모바일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에 백신 구매까지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베트남 정부는 최근 민간기업의 지원을 받아 백신 구매 펀드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총 1억5천만 회분의 백신을 마련하기 위해 배정된 재원은 11억달러(1조 2천317억원).

현지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도움으로 이미 상당한 규모의 재원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 중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펀드 조성에 참여한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