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7회 현충일 추념식이 열렸다.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리는 이번 추념식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비롯해 국가유공자·유족, 각계 대표, 시민 등 50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배우 전미도는 육군준장 고(故) 황규만 장군 외손녀 정지희 씨의 편지 ‘할아버지의 약속’을 낭독하며 현충일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지희 씨의 편지에는 국립서울현충원 묘비 중 유일하게 이름이 없는 ‘김의 묘’와 전우의 이름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치고 전우 옆에 영원히 잠든 고(故) 황규만 장군의 이야기가 담겼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50년, 경북 안강지구 도음산 385지구 전투에서 시작됐다.
당시 20살이던 황규만 소위가 이끌던 소대는 북한군과의 치열한 접전 속에 몰살 위기에 처했다.
이때 지원병력으로 참전한 부대가 바로 김 소위(당시 29세 추정)가 지휘하는 소대였다.
안타깝게도 1500여 명의 아군이 전사했고 그중에 김 소위도 끼어 있었다.
작전을 위해 현장을 급히 떠나야 했던 황 소위는 김 소위의 유해를 땅에 묻고 소나무에 표식을 해두었다.
그러면서 후일 전투가 끝나면 꼭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14년 후인 1964년, 황 장군은 다시 고지를 찾아 소나무 표식을 근거로 김 소위의 유해를 발굴해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그의 이름은 알 길이 없어 ‘육군 소위 김 의묘’라고 쓸 수밖에 없었다.
황 장군은 시간이 나는 대로 김 소위의 묘를 찾았고, 반드시 그의 이름을 찾아 묘비에 새겨주겠다고 다짐했다.
1990년, 26년을 수소문한 끝에 김 소위의 신원(1922년생 김수영)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름을 찾았지만 현재 김 소위 묘비명은 그대로다.
전쟁의 아픔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국방부가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묘비를 그대로 두고 묘비앞 추모비에 김소위의 이름과 사연을 새겼다.
전장에서 10여 분 함께했던 전우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았던 황 장군은 사후 김 소위 곁에 묻히기를 원했다.
어린 지희 씨가 ‘할아버지가 장군님들처럼 멋있는 곳에 계시면 더 좋겠어요’라고 할 때면 황 장군은 늘 김 소위와 다른 군인들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지희 씨는 “나이가 들어서야 왜 할아버지가 늘 빚진 인생,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하셨는지 알 것 같다”라며 “소중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김 소위님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할아버지의 몫이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라고 적었다.
2020년 6월 21일 영면한 황 장군은 그의 소원대로 김 소위 곁에 함께할 수 있게 됐다.
황 장군의 아들에 따르면 황 장군은 이 소원을 위해 생전 국방부에 청원을 넣고 보훈처의 허락을 받으며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