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여 씨는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살인 및 강간치사 혐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9년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 31년 만의 명예회복이었다.
윤 씨는 8·15 특별사면 대상자로 선정돼 2009년 8월 가석방될 때까지 청주교도소에서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세상에 나온 윤 씨가 처음 느낀 감정은 ‘막막함’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채널A ‘아이콘택트’에 출연해서 출소 당시 심정을 자세히 밝혔다.
윤 씨는 “참 막막하더라고요. 내가 이 세상에 나와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20년 만에 되찾은 자유였지만, 20년만큼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출소 후 처음 찾은 곳은 식당이었다. 자리에 앉자 식당 주인이 낯선 종이를 건네줬다. 메뉴판이었다. 20년 전 메뉴판 같은 건 세상에 없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주문을 하고 수저를 집었다. 그런데 손에서 수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무거워서 그랬다.
교도소에서는 자해 도구나 흉기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플라스틱 수저를 썼다. 20년 만에 잡은 쇠젓가락조차 그에게는 낯설었다.
계산할 때 다른 손님들에 내미는 작은 종이가 신용카드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신용카드를 쓰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토큰을 내고 탔던 버스도 이제는 교통카드라는 걸 사용한다고 했다. 한번은 복잡해진 노선이 익숙하지 않아 버스를 잘못 타서 10시간 만에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윤 씨는 “나만 1990년도, 내가 교도소에 들어갔던 그 시간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살인자라는 누명 때문에 모두가 손가락질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조차 냉대했다. 20년 만에 마주한 세상은 그저 외롭고 쓸쓸한 곳이었다.
모든 게 변해버린 세상이 두려웠던 윤 씨는 두 달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겨우 세상으로 나왔는데, 잃어버린 20년이 또다시 그를 방에 가둬버린 것이다.
그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은 박종덕 교도관이었다.
박 교도관은 힘겨워하던 윤성여 씨를 위로해줬고, 때로는 꾸짖기도 했다. 또 취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윤 씨는 “유일하게 나를 믿어준 사람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살아있을지 죽어있을지 장담을 못 할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