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기인들은 음악에 숨겨진 암호를 듣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예견했다.
고대 중국 음악은 궁(宫) · 상(商) · 각(角) · 치(徵) · 우(羽) 다섯 가지 음계로 이루어져 있다. 궁은 군주, 상은 신하, 각은 백성, 치는 군대, 우는 만물을 상징한다.
완벽한 악곡은 ‘궁’을 따라 시작한다. 그다음에 ‘각’과 ‘치’를 거쳐 ‘우’로 이루어지며, ‘상’으로 끝맺는다. 이 같은 음률은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가 문신과 무장을 거느리고 백성을 위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가의 각 관청이 한마음으로 맡은 임무를 다하면, 당연히 그 나라는 창성하고 부유해질 것이다.
중국 고대의 훌륭한 왕과 총명한 군주는 좋은 음률과 바른 음악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음악은 단순히 즐거움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교화나 그 시대 상황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왕, 신하, 백성 등의 의미를 표현했기에 중국 역대 왕조는 음률의 변화를 듣고 국가의 흥망을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제부터 음악을 듣고 국가의 미래를 예측한 기인들을 살펴보자.
종묘 음악을 듣고 당나라 왕실의 경사를 예측하다.
무측천신룡(武则天神龙) 원년(705년), 서경태묘에서 열린 봄 축제에서 정치가 배지고(裴知古)도 함께 즐겼다. 연주를 들은 그는 음률을 담당한 관리 원행충(元行冲)에게 나즈막이 말했다. “금석(金石)이 조화를 이루니 반드시 경사가 있겠소. 당 왕족의 자손 가운데 장차 경사가 있을 것이오.” 그가 말한 바로 그달에 측천무후가 병사했다.
천수(天授) 원년(690년)에 왕위를 찬탈한 측천무후는 당의 국호를 ‘주(周)’로 바꾸고, 스스로 황위에 올랐다. 당 중종 이현(李显)이 즉위한 후 당의 국호를 회복했다. 배지고는 음악을 통해 장차 당 왕실에 경사가 있을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이다.
음악을 듣고 국난을 예측한 영왕(寧王)
당나라 말기에 서량부 도독이 새로운 악곡을 만들어 바쳤다. 당 현종은 친족들을 초대해 별채에서 악곡을 감상했다. 연주가 끝난 후, 왕들은 칭찬했지만, 현종의 형 영왕(寧王) 이헌묵(李宪默)만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현종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시오?”
영왕이 답했다. “비록 이 악곡의 음조는 아름답지만, 제가 들은 바를 말씀드리자면, 곡은 ‘궁’을 따라 시작해 ‘상’으로 맺으며, 중간은 ‘각’, ‘치’, ‘우’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악곡은 시작할 때 이미 ‘궁’을 벗어났고, ‘치’와 ‘상’ 두 가지 음이 어지럽게 섞여 있으며, 기세가 거칠고 사납습니다. 제가 알기로 ‘궁’은 왕, ‘상’은 신하를 뜻하는데, ‘궁’이 강하지 않으니 왕의 세력이 약하다는 뜻이고, ‘상’은 지나치게 강하니 신하가 난을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가 하극상을 범할 날이 올까 염려됩니다. 그러면 폐하께서는 탈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곡 중의 ‘치’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영왕의 해석을 들은 현종은 침묵했다.
오래지 않아 안녹산(安禄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안사의 난’을 일으켰고, 당나라 왕조는 쇠퇴하고 말았다. 영왕은 음악을 듣고 국가적 위기를 예견한 것이다.
천보(天寶) 연간(年間) 당시, 《양주곡(凉州曲)》,《감주곡(甘州曲)》,《이주곡(伊州曲)》등 변방의 지명을 본떠 곡명을 짓는 게 유행한 적이 있다. 이 악곡들은 ‘번성(繁声 : 붕 떠 있는 듯한 음조)’을 많이 사용했으며, 곡명 앞에 모두 ‘파(破)’ 자를 붙였다. 나중에 이 변방 지역은 서쪽 오랑캐의 공격을 받고 점령당했다. 병란이 발생하기 전에 악곡에는 그 징조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수나라의 난리를 예견한 악공
수나라 왕조 때, 천부적으로 총명하고 음률에 통달한 만보상(万寶常)이라는 악공이 있었다. 어느 해, 만보상은 악공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은 후에 온통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음악 소리가 난폭하고 슬픔이 가득하니 가까운 시일 안에 커다란 난리가 날 것이오. 사방의 바닷물이 끓어오르고 서로 잔인하게 죽이게 될 거요.”
하지만 당시에는 천하가 태평해서 누구도 만보상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대업(大业) 14년, 수 양제(炀帝)는 강남을 유람하는 즐거움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잊고 말았다. 나날이 사치와 음란에 빠져들었고 곳곳에 있는 궁전과 화원을 수리하게 했다. 게다가 별관을 짓기 위해 백성을 노역에 동원하고 엄청난 세금을 거두었다. 민생이 피폐해지자 사방에서 도적떼가 설쳤고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만보상의 예언이 들어맞았다.
음악을 듣고 황제가 돌아오지 못할 것을 예견한 악공
수(隋) 왕조에, 음률에 정통한 왕령(王令)이라는 악공이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아들이 궁전에서 집으로 돌아와 집 밖에서 비파로 《안공자곡(安公子曲)》을 연주했다.
집에서 음악을 들은 왕령은 크게 놀라 서둘러 아들을 불러 말했다. “황상이 강도(江都)로 행차하실 때 너는 따라가지 않는 게 좋겠다. 황제는 틀림없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들이 이유를 묻자 그가 답했다. “이 악곡에서 ‘궁’은 한 번 나오고 되풀이되지 않는다. ‘궁’은 왕을 뜻하므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의 예언대로 수 양제는 행차 후 경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강도(江都)에서 피살됐다.
음률을 듣고 남송이 멸망할 것을 예견한 문천상(文天祥)
원에 맞서 싸운 유명한 역사적 영웅 문천상(文天祥)은 몽골 군대의 노래를 듣고 남송 왕조의 몰락을 예견했다.
원조(元朝) 15년(1278년), 남송은 패전하자 승상 문천상은 포로가 됐다. 원나라 군대는 그를 북경으로 압송했다. 당시 몽골군은 승전의 기쁨을 표현한 《아랄래(阿剌来)》라는 노래를 합창했다. 배에 타고 있던 문천상은 그 노래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가 “이 노래는 어느 지방에서 비롯된 것인가?”라고 묻자, 군관은 “이 노래는 사막에서 생겨난 몽골 제국의 노래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들은 문천상은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는 황종(黄鐘)의 소리다. 남송은 다시 흥하지 못하겠구나.” 고대 중국에서 황종의 소리는 ‘궁’이며, 왕을 비유했다. 문천상은 황종이 더해진 몽골군의 노래를 듣고 남송의 국운이 다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을 알았다.
수(隋), 당(唐), 송(宋), 원(元)의 관리와 백성들은 음악을 들으면,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 국운의 성쇠를 예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런 사실이 무척 신비롭게 느껴진다.
추상적인 음표로 이루어진 음악으로 국가의 흥망을 능히 예측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음률, 즉 음악의 규칙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또 다른 신기한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닐까?
– 참고자료
《태평엄기(太平广记) 제1권 제202》
《수서(隋书).권 78》
《송인질사회편(宋人轶事汇编), 권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