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6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한산 : 용의 출현’ 속 ‘가상 인물’이라는 오해를 받고있는 인물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항복해 일본과 싸운 왜군 장수 ‘준사’라는 인물이다.
준사라는 인물은 난중일기에 짧게 등장한다. 난중일기 속 준사는 명량해전에서 바다에 빠진 왜군들을 보며 “저 무늬 있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적장입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준사에 대한 기록은 난중일기에 기록된 부분 말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준사말고도 조선에 투항한 일본인인 항왜(降倭)들은 더 있다.
그중에서도 글에서 다룰 인물은 김충선(金忠善,1571~1642)이다. 귀화 전 이름은 사야가(沙也可)로 전해진다.
사야가의 조선 귀화
사야가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의 우선봉장으로 참전했다.
전쟁 도중 사야가는 조선의 ‘예의’에 감동해 귀화를 결심한다. 종군 7일 만에 내린 결단이었다.
또 <모하당술회>(慕夏堂述懷)에서는,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왜군에 환멸을 느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경상도 병마 절도사 박진에게, “사람이 사나이로 태어난 것은 다행한 일이나 불행하게도 문화의 땅에 태어나지 못하고 오랑캐 나라에 태어나서 끝내 오랑캐로 죽게 된다면 어찌 영웅으로 한이 되는 일이 아니랴 하고 때로는 눈물짓기도 하고 때로는 침식을 잊고 번민하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의 예의문물과 의관 풍속을 아름답게 여겨 예의의 나라에서 성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따름입니다”라며 항복의 뜻을 밝혔다.
사야가는 뜻을 같이하는 자신의 조총부대 500명과 함께 귀화했다. 귀화한 조총부대원들은 조선에 조총과 화약 제조법을 전수했으며 울산·경주·영주 등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사야가는 이순신 장군과도 교류했다. 조총과 화포, 화약 만드는 법에 관하여 이순신과 주고받았던 서신이 남아있다.
사야가가 왜군에 함락됐던 성 18개를 되찾아오자, 선조는 정이품 자헌대부 관직과 김해 김씨 성과 충선(忠善)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바다를 건너온 모래를 걸러 금을 얻었다는 뜻으로 김 씨 성을 주었고, 충성스럽고 착하다 해서 이름을 충선이라고 지었다.
승정원일기는 김충선을 “담력이 뛰어나고 성품 또한 공손하고 삼간다”고 묘사했다.
그는 이후에도 북쪽의 여진족의 침입이 잦아지자 1903년부터 10년 동안 자원하여 북방의 국경을 지키고, 이괄의 난, 정묘호란 진압에도 참여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도 군사를 모아 큰 승리를 거뒀다.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후손이 사는 마을
김충선 장군의 후손들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모여 살고 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김충선 장군을 시조로 하는 사성 김해 김씨는 전국에 약 7500명이 있다. 우록리에만 87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다.
김해 김씨라는 성씨에다 임금이 성씨를 하사했다는 뜻인 사성(賜姓)을 붙였다. 때로는 그가 거주하던 지역 이름을 따 ‘우록 김씨’라고도 한다.
우록(友鹿)은 ‘사슴을 벗 삼는다’는 뜻이다. 병자호란 이후 거처를 찾던 김충선 장군이 여기 산자락에서 사슴이나 벗 삼고 살겠다며 자리를 잡았다.
마을에는 김충선 장군을 기리는 녹동서원과 장군의 위폐와 영정을 모신 녹동사가 있다.
서원 뒤쪽 산자락에는 장군의 묘소가, 서원 서쪽에는 생가가 있다.
김충선 장군에 대한 일본의 반응
일본에서는 1960년대까지 김충선 장군을 두고 ‘조선이 만든 허구 인물’이라고 주장했었다. 실제 임진왜란 이후 ‘배신자‘로 몰린 사야가 가문도 일본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김충선 장군의 기록이 알려진 바 없다. 출생지도 불분명하다. ‘사야가‘라는 이름도 그가 일본에 두고 온 가족이 보복을 당할까 봐 걱정해 쓰던 가명일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일본의 한 역사 소설가가 김충선의 위패가 있는 녹동서원을 방문한 뒤 책을 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본 역사학자들은 사야가의 과거를 복원하려 나섰고, 사야가가 스즈키 마고이치 또는 하라다 노부타네 둘 중 한 인물이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임진왜란 400주년이 되던 1992년 일본 NHK 방송은 ‘출병에 대의 없다-풍신수길을 배반한 사나이 사야가’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다.
1998년에는 한국과 일본 교과서에 김충선 장군의 이야기가 실렸다.